바야흐로 2019년은 프로야구의 위기다. 전통적으로 야구에 열광적인 도시인데다 창원 NC파크라는 새 구장을 열고 시즌을 맞이한 NC 다이노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구단이 전년도 대비 관중 수가 급감했다. 관중 수 감소의 원인을 각종 매체에서 진단한 것, 또 필자의 생각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팬층이 넓고 충성심이 높은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 기아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 등의 성적이 부진하다.

 

둘째, 지난 몇 년 간 극심한 타고투저의 현상을 겪어 비판을 받은지라 KBO는 공인구의 반발계수를 조정하였고, 따라서 홈런 또는 장타가 전년 대비 눈에 띄게 감소하였고, 이는 호쾌한 야구를 기대하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셋째, 야구선수들, 또는 야구선수 출신의 잦은 구설수와 사건 사고가 언론에 종종 보도된다는 것이다.

 

넷째, 세계 최고리그인 EPL에서 맹활약 중인 손흥민 선수, U-20 월드컵 대표팀의 준우승과 이강인 선수의 골든볼,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속출하는 명장면 등 국내외 축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서 상대적으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시즌 프로축구의 관중 수는 크게 늘었다.

 

다섯째, 프로야구 선수들이 팬들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사인 한 번 해달라고 매달리는 팬들을 마치 공기 취급하며 무시하고 가는 김선빈 선수의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 김선빈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팬들을 외면하고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망각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저질스러운 행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여섯째, 심판들의 심각하고도 잦은 오심, 그리고 오심 후에도 솜방망이 징계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공정함이 중요한 경기에서, 선후배 간 쓸데 없는 위계서열로만 점철된 한국야구에서, 대부분이 역시 선수 출신인 심판들은 판정에 대한 의문 제기를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카메라 및 기술의 발달로, 중계를 보고 있는 이들이 심판보다 더 정확히 판정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여전히 심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일곱째, 야구라는 종목 자체가 상대적으로 관중에게는 정적인 경기이기에, 비단 KBO 프로야구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에서도 젊은 세대로부터 점차 외면을 받고 있다. 

 

여덟째, 프로야구 경기 질의 하향 평준화로 수준 낮은 경기가 속출한다는 점이다.

 

 

 

위 요인들 중 마지막을 제외한 대부분은 올해 관중 수 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대부분 지난 수 년 간 프로야구에서 늘 존재했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롯데, 한화는 늘 하위권이었고, 극심한 타고투저는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고 경기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으며, 야구선수들과 심판들의 팬들을 무시하는 안하무인 태도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핵심은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 질의 하향 평준화'인 것이다. 문제는 왜 '하향 평준화'가 되었는가를 묻는 매체/칼럼/기자/야구인이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바로 이 것을 지적하려 한다.

 

하향 평준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지나치게 많은 구단 수이다. 고등학교 야구팀이 4,000여 개가 넘는다는 일본의 경우도 프로야구단의 수는 12개 팀에 불과하다. 반면에 고등학교 야구팀이 70개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의 경우 프로야구팀이 10개나 된다. 유소년 야구 인프라와 인구 수, 고등학교 야구팀 수, 프로야구 운영 수익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는 프로야구팀 10개는 지나치게 많다. 

 

9구단인 NC 다이노스, 10구단인 KT 위즈를 창단할 때 야구인들의 주요 논리 중 하나는 '야구에 전념하던 이들에게 보다 많은 취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야구팀의 숫자에서 보듯이, 10개 구단에 프로 수준의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선수를 수급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 최고가 되지 못하여 도태되는 이들은 어떡하냐는 야구인들의 항변도 논리에 맞지 않다. 실력이 부족하여 도태되는 것은 비단 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 아니 모든 직업군에 해당되는 문제이다. 일본은 4,000개의 고등학교 야구부에 몸 담던 이들이 입단할 수 있는 기회는 12개 프로구단 뿐이다. 그렇다면 일본 프로구단은 도태된 나머지를 다 구제해주어야 하는가?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육성의 개념이 거의 없다. 프로무대는 증명하는 곳이지, 성장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워낙 야구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기에, 얼마든지 대체할 선수도 많고, 가장 우수한 선수를 선발해서 1군 경기에 내보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한국 프로야구는 그야말로 프로 수준의 경기를 펼칠 수 있는 로스터의 선수들을 10구단에 공급해낼 여력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선수를 '키워서' 쓸 수 밖에 없다. 2군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실력이 완성된 후에 1군 경기를 뛰어야 하는 것이 정석인데, 1, 2위 팀에서는 1군에 들지도 못할 수준의 선수들이 하위권 팀들의 주전을 하고 있다.

 

KBO 프로야구 FA제도가, 몇몇 스타플레이어에게만 지나치게 시장가치보다 더 높은 계약 금액을 안겨주는 기형적 제도라고 하는데, 이것도 결국 얇은 선수 저변으로 프로급 수준의 선수 수급이 힘든 반면 구단 수는 지나치게 많은 탓에 불가피하게 초래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시장가치를 투명하게 반영한 제도인지도 모른다. 연봉 수천만원인 선수가 한 팀에도 수두룩한데 수십 억원을 받는 강민호, 이대호, 양현종 등과 같은 선수가 반드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 리그와 선수 실력이 햐항 평준화될수록, 정말로 실력 있는 야구선수들의 가치는 필연적으로 폭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관중 수 저하를 막고, 프로다운 수준의 경기가 펼쳐지기 위해서는 야구인들의 이기적인 밥그릇 싸움을 무시하고 구단 수를 과감하게 6개나 8개로 감축해야 한다. 그리고 야구는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 체육으로 저변을 확대해야 하며, 심판과 선수들의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는 호된 징계를 내려야 한다. 그것만이 KBO 프로야구를 살리는 길이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각종 기사들 중에 가장 조회 수가 높은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일 것이다. 매체의 발달로 해외  유명 리그의 중계 및 소식까지 속속들이 안방에서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요 증가에 따른 전세계의 스포츠 소식 기사도 다양화되고 양도 증가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문제점은 스포츠 기자들이 양산하는 기사의 질적 저하다. 오타와 비문이 거슬려 도무지 기사를 읽기 힘든 정도인데, 어느 특정 매체나 특정 기자만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빈도가 너무 많고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스포츠 기자들 입장에서는 변명할 이유가 몇 가지 있을지도 모르겠다. 첫째, 스포츠 기사는 긴박하게 작성하여 내는 경우가 많다. 시기를 놓친 기사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포츠 경기 결과가 나오기 전에 결과를 예상하여 기사를 미리 작성해두었다가 경기가 끝난 즉시 앞다투어 기사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변명 거리로서는 부족하다. 기사가 긴박하고 시기를 맞춰야 한다는 점이 정치 분야 기사는 안 그런가? IT 분야 기사는 또 어떤가? 아이폰 새 제품 발표 후 이틀 후에 기사를 낼 것인가? 

 

두 번째 변명거리라면 해외 스포츠 및 선수에 대한 정보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에 해외 기사를 번역하여 2차 기사를 생산해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부족하다. 해외 기사들을 참고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정치,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가 동일한 조건이다. 미국 대통령에 대한 분석 기사에 여느 스포츠 기자들처럼 오타와 비문 투성이의 기사를 내는 것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번역기를 돌린 듯한 엉터리 문체는 순전히 스포츠 기자들의 문제이다.

 

스포츠를 전문으로 하는 기자는 둘 중 하나다. 선수 출신이거나, 선수가 아닌데 기자를 하거나. 선수 출신이라면, 여느 예능인들이나 체육인들이 그러하듯, 한창 때 스포츠에 전념하느라 학교 교육에 소홀하여 국어 사용에 철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경우 편집팀이 붙어서 기사 교정 후에 탈고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선수 출신이 아니라면? 혹시라도 편견에 따라 이런 질문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도 스포츠인처럼 교양이 부족한 사람들인가? 정치, 경제 분야 기자를 할 정도의 수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스포츠 기자인가? 이 질문에 당당하게 반박할 수 있으려면면 스포츠 기자들 스스로 각성하고 증명해야 한다.

 

보통 스포츠 기사의 경우 종목별 용어 사용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 경우가 많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스포츠 특정 종목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스포츠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 이 분야인데, 심지어 매체마다 방대한 스포츠 전반을 커버하려면 각 종목별 기사 담당 인력과 자원은 더더욱 제한적일 것이다. 따라서 제 3자가 기사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오타를 검열해주는 시스템이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른 기사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비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피해는 스포츠 기사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대중이 고스란히 입는다. 오늘도 스포츠 기사마다 보이는 엉터리 번역체와 비문과 오타는 그야말로 '문자 공해'에 가깝다.

 

전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축구라는 구기 종목의 룰은 의외로 간단하다. 양 팀 각각 11명의 선수들이 상대방의 골대를 향해 발이나 머리로 공을 집어넣는 것이다. 국가대표팀으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 등의 팀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클럽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레알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등의 팀이 정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축구 경기에 있어서 맞붙는 팀끼리 실력 차가 결과를 좌우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과연 정말 실력이 결과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축구라는 종목일까? 


양팀 각 11명의 선수 중 골키퍼 1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10인, 총 20인의 선수는 90분 간 그라운드에서 뛰어다닌다. 목표는 하나, 상대팀 골문에 골을 넣기 위함이다. 축구선수 중에 가장 활동량이 많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지성 선수가 90분 간 약 11km를 뛰었다. 일반 선수들은 평균 8~9km를 뛴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마어마한 활동량이다. 축구선수가 한 경기를 뛰고 나면 체중이 몇 kg이 빠진다는 이야기도 과장이 아닐 듯 하다. 문제는 그토록 치열하게 1인당 9km를 뛰면서도 90분 간 양 팀 합쳐 한 골도 나오기 힘든 게 축구라는 종목인데, 골문 근처에서 단 한 명의 수비선수의 실수 또는 반칙으로 성공률이 80%에 육박하는 페널티킥을 주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페널티로 넣은 골도 1골이고, 필드골로 넣은 골도 1골로서 두 골의 가치는 동등하다. 그 중 하나는 수비선수 찰나의 실수로 거저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90분간 11km를 뛰며 체중이 몇 kg이 빠지는 노력을 10명의 선수가 해야 겨우 획득할까 말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잘못됐다. 


페널티를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마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골문 근처에서 가하는 반칙을 심한 벌칙으로 제재하지 않을 경우, 골을 먹느니 너도나도 반칙을 범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당한 공격수의 권리, 그리고 좀 더 박진감 넘치는 경기 진행을 위해 수비선수의 골문 근처의 과도한 반칙을 강도 높게 제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것이 합당한가? 반칙을 예로 들면,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의 심한 반칙(레드 카드를 받을 정도)과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약한 반칙(의도되지 않은 접촉) 중 어떤 것이 더 강도 높은 제재를 받아야 할 것인가? 그것은 응당 전자가 되어야 한다. 농구의 경우도 코트 어디서 벌어졌건, 테크니컬 파울이 선언되면 상대팀 골문에서의 자유투가 주어진다.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는 상대팀 다리를 부러뜨릴 정도로 돌진해도 경기 스코어에는 영향이 없고,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는 상대의 진로를 살짝만 방해하거나, 공을 위해 달려들었으나 결과적으로 공은 다른 곳으로 튀어버리고 상대팀의 선수와 접촉이 되었을 때 여지 없이 페널티가 선언된다. 한 마디로 페널티 밖에서는 선수 생명에 위해를 가할만한 심한 반칙도 스포츠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페널티 안에서는 가벼운 접촉도 죄인 취급을 받는다. 이것이 정당한가?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넣어 1:0으로 승부가 갈려 끝난 경기는, 과연 이긴 팀이 진 팀보다 실력이 나았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 아니, 정말 '이겼다'라는 표현을 쓸 수나 있는가? 그러나 결과는 대개 이렇다. 페널티킥만으로 1:0으로 경기가 끝나도 언론에 바로 대서특필된다. "A팀이 B팀을 압도하여 1:0 승리를 거두었다." 페널티킥으로 한 골 넣은 것이 '압도'인가? '승리'인가?


페널티킥의 또 하나 커다란 맹점은, 바로 '인간'(심판)의 개입이다. 이상적인 축구 경기는, 심판은 방관자적 입장에서 오로지 양 팀의 축구 실력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페널티킥은 선언이라는 판단, 혹은 페널티킥이 내려질 것이라 판단되는 반칙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주지 않는 판단 모두 제 3자의 인위적인 개입에 의해 결정된다. 그마저도 공정한 잣대도 아니고, 심판이라는 자격을 부여받은 이의 오로지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다. 그 날 심판이 부부싸움을 하지 않고 오기를 바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페널티킥을 인간이, 또 소수가 판단하여 결정하기에 필연적으로 언제나 판정시비, 혹은 심판 매수, 비리 의혹이 따라올 수 밖에 없다. 애초에 공정한 경기라면 제 3자의 기분, 혹은 개인적인 시각과 견해 차가 아닌, 그야말로 룰과 양팀의 축구 실력만으로 100% 제 3자 외부개입 없는 결과가 도출되어야 한다. 


축구의 페널티킥이 워낙 흠결이 많은 제도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는지, 6심제 내지는 VAR(비디오 판독)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6심제나 4심제나 주심의 의결권이 절대적인 것은 차이가 없으므로 부질 없는 노력이다. 이 비디오 판독이라는 것도 웃긴 것이, 제 3자의 판단을 공정하게 만들고자 도입한 것이 승부를 더 불공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제 3자의 개입을 막아야 더 공정한 것인데, 소위 정확한 판단이라는 목적 하에 제 3자의 개입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추겼다는 것이다. 때문에 예전에는 그나마 경기 흐름에 맡겨두었던 지나간 의혹 장면까지 몇 분 후에 비디오로 판독하여 추가로 페널티킥을 선언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까지 발생한다. 여전히 판독은 지극히 주관적인 심판 1인의 그날의 기분과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경기는 그대로 끝. 


이러한 명백한 불완전함 때문에 일부 선수들은 일부러 소위 '다이빙'을 하여 페널티킥을 유도하기도 한다. 실력이 뛰어나 원래 평소 여러 수비수의 견제를 받던 공격수가 페널티에어리어 안에서 공을 끌다가 상대방 선수의 접촉이 있자 의도적으로 굴러 넘어지면, 종종 페널티킥이 선언되곤 한다. 반대로 심판이 생각하기에 접촉이 없어보이는데도 공격수가 넘어지면, 다이빙을 한 선수는 경고를 받기도 한다. 문제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심지어 VAR로도 이 공격수가 일부러 페널티킥을 받으려고 '헐리우드 액션'을 벌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접촉에 의해 넘어진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무척 모호하다는 것이다. 


모호함과 불공정 가능성이 있는 제재 수단은 억울한 피해자를 한 명이라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초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현대 국가에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는, 단 10000명의 1명이라도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사형을 당해 목숨을 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아예 사형을 집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페널티킥 선언에 있어서의 오심과 비일관성은 만 분의 1이 아니라 2분의 1 그 이상일 것이다.


경기가 연장을 지나고도 마무리되지 않았을 경우에 승부차기로 가는 것도 문제가 많다. 전후반 90분, 연장 30분 총 120분을 경기해도 승부가 나지 않기에 불가피하게 승자를 가리기 위한 제도라지만, 이는 마치 두 명의 사람이 승부를 할 때, 권투로 겨루다가 갑자기 공 멀리 던지기로 겨루는 것과 같다. 그만큼 필드에서의 축구경기와 승부차기는 사용하는 공과 골대만 같을 뿐 경기의 규칙과 실력 검증 면에서 전혀 다른 경기종목에 가깝다. 승부차기로 승자가 결정되면, 정말 승부차기에서 이긴 팀은 진 팀보다 축구 실력이 우월한 것인가? 아니라고? 아니면 왜 진 팀은 패자로 기록(기억)되어야 하는가?


축구는 양팀의 실력에 의해 결과가 결정이 되어야지, 심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놀음이 어디 공정한 경기인가? 이렇게 엉터리에 불완전한 경기를 대표 구기 종목으로 끌고가야 하는가?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개입되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미가 있는 것이 축구다.' 이런 끔찍한 논리는 주로 야구에서 많이 나오는데, 현대 야구에서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100% 인공지능, 혹은 기계로 자동 판독이 가능함에도, 또 그것을 모든 프로경기에서 상용화할만한 기술력과 자본력이 충분함에도 도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각 루와 홈에서의 세이프, 볼 판정, 타자의 배트 스윙여부 판정도 굳이 심판이 각 위치마다 한 명씩 서 있지 않아도 카메라 기술만으로도 대부분 판정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전적으로 맡겨놓아 일관성도 파괴하고, 공정성도 해치고, 비용 낭비의 비효율성마저 가져온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미'의 스포츠라 포장한다. 


제 3자/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순수하게 양 팀의 실력만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을 '공정한 스포츠'라 한다. 따라서 주심의 판단(action) 혹은 회피(inaction), 또는 선수의 의도성을 구분하기 모호하면서도,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어버리는 페널티킥 제도는 매우 불공정하다. 90분간 뛰어다녀도 겨우 넣는 필드골 1골임에도, 순간의 사소한 실수도 접촉이면 페널티킥을 선언하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다. 축구는 실력이 그대로 반영되는 구기 종목이 아니다. 심판의 기분과 주관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이에 대한 제어장치도 없는 매우 불공정한 공놀이다. 







한국이 아시안컵 8강에서 카타르에 0:1로 패배하면서 4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슈퍼스타 손흥민이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고, 벤투 감독이 부임한 이래 무패 행진을 하고 있었으며, 해외 전문가들도 다수가 한국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기에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벤투 감독이 수장으로서 최종적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하지만, 아시안컵의 좋지 못한 성과를 벤투 감독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첫째, 벤투 감독의 부임 당시, 한국은 국가대표팀이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듣고 있던 터였다. 이렇다할 팀의 기둥도, 각 포지션별 우월한 플레이어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불운한 세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선수 구성은 지금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둘째, 벤투 감독의 부임은 이제 겨우 8개월 남짓 되었을 뿐이다. A매치 경기를 앞두고 며칠, 많게는 몇 주만 소집되는 국가대표팀의 특성 상, 8개월이라는 기간은 감독의 의도대로 팀을 만들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다. 따라서 벤투 감독에게 온전히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셋째, 아시안컵 8강에서 패배를 하여 4강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그 직전까지 벤투 호의 A매치 전적은 7승 4무로 11경기 무패였다. 한국 국가대표 감독 데뷔 후 준수한 성적을 남겼기에, 한 경기 패배만으로 그의 나머지 성과까지 가리울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선수 탓인가? 현재 한국 국가대표팀은 총체적 난국이다. 


첫째, 윙백으로 나서는 홍철, 이용 등의 센터링 능력은 역대 최악이다.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의 절친이었던 에브라나, 2002년 국가대표팀의 이영표, 불륜송종국과 같이, 적절한 롱패스 및, 측면에서의 센터링을 넘겨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둘째, 수비의 핵심이던 장현수의 갑작스런 하차가 타격이 컸다. 장현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특례로 병역을 면제받은 후, 의무로 이행하게 되어있는 자원봉사 기록을 조작한 댓가로 국가대표에서 퇴출되었다. 2018 월드컵 당시 여러 차례 실점의 빌미가 되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장현수는 슈틸리케, 신태용, 벤투 감독 하에서 부인할 수 없는 수비의 핵심이자 리더었다. 그가 퇴출되자 한국 수비진은 더욱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셋째, 팀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기성용의 부상이 아쉬웠다. 공격, 수비, 패스, 킥, 리더십, 소통, 굳이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부문에서 팀의 기둥 역할을 하며 코치와 선수 간 가교 역할을 하던 묵직해진 리더 성숙한 모습의 전임 캡틴 기성용의 빈 자리는 너무도 컸다. 그의 그라운드에서의 역할이 특히 패스 장인,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기능에 특화되어 있기에, 그의 부재로 인한 국가대표팀은 마치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과 같았다. 


넷째, 팀에서 킥이 훌륭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프리킥, 코너킥 등 세트피스 상황에서 키커를 담당하는 손흥민 또는 김진수, 부상으로 빠진 기성용을 제외하고는 명실공히 '아 저 선수는 정말 킥이 훌륭하다.'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가 없다. 8강 카타르 전에서도, 내내 수세였던 카타르는 한 번의 역습 상황에서 송곳 같은 킥 한 방으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킥의 스피드와 궤적이 매우 훌륭하여, 김승규 골키퍼 뿐만이 아니라 동물적 감각을 가진 조현우 골키퍼였다 할지라도 막기 힘들었을 공이었다.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간간히 나오던 중거리슛은, 득점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지 않는 수비진을 한 번 끌어올리기 위한, 혹은 팀 내 사기 진작을 위한 시도로 보였으며 상대팀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다섯째, 이청용은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전성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청용은 한때, 당시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영리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 좋게 말하면 영리하고, 나쁘게 말하면 약아빠진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 그의 플레이는 상대팀에게는 커다란 위협이었다. 그러나 2011년 선수 생명을 위협받는 살인적 태클로 큰 부상을 입은 뒤 오랜 공백을 겪고 나온 후의 이청용은, 단 한 번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2014년의 월드컵에서는 박주영, 정성룡이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워낙 욕을 많이 먹던 그들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아웃라이어라고 할 수 있는 그 둘을 제외한다면 2014년 월드컵 최악의 플레이어는 이청용이었다. 킥은 소심했고, 패스 성공률은 매우 떨어졌으며, 돌파시도는 매번 막히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리한 플레이어라는 이유로 과거의 모습을 내심 기대하며 계속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끝내 2018년 월드컵에는 초대를 받지 못했고, 결국 벤투호의 출범과 함께 다시 중용되기 시작한다. 이청용은 여전히 현 국가대표팀 선수 중에서 가장 영리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 중 한 명이고, A매치 대표 경험이 풍부하다. 또 최근 모습이 개선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플레이는 저점을 찍었던 2014년 월드컵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2011년 커다란 부상과 함께 그의 예전 모습은 어쩌면 영원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선수가 아직도 현역 대표팀 중 가장 훌륭한 선수 취급을 받으니, 현 국가대표팀이 얼마나 수준이 떨어지는가를 알 수 있다.


여섯째, 지동원, 구자철은 국가대표로 낙제점에 가깝다. 지동원은 포워드로, 구자철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누구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들은 비난의 중심에 있다. 감독과 팬들이 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자철은 2014년 월드컵 당시 가장 욕을 많이 먹던 박주영, 정성룡을 제외하고는 이청용과 더불어 가장 플레이의 맥을 끊어먹는 원흉이었고, 지동원은 훌륭한 피지컬을 갖추었으면서도 공격수로서 너무 존재감이 없어서 한동안 국가대표팀에 부름도 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시안컵에서도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문제는 그들 외에는 국가대표팀의 공격옵션이 없다시피하다는 것이다. 23인의 대표팀 중 포워드는 황의조와 지동원 뿐이다. 대체가 불가능하기에 공격이 필요할 때 울며겨자먹기로 역시 그들을 투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곱째, 이승우의 더딘 성장이다. FC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던 수 년 전의 모습에서 이승우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170도 안되는 작은 키와 얇은 몸이라는 부족한 피지컬을 극복하고도 남을 정도의 우월한 실력은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나상호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대체 선발되었기에 애초에 벤투 감독의 구상에도 없었거니와, 공격 옵션이 필요할 때, 지동원과 너무나 큰 피지컬 차이, 그리고 포워드와 미들이라는 포지션 차이로 인해 투입시키기에도 애매하였다. 여기에 보결로 선발되어 늦게 합류한 판에, 대표팀 막내로서 불필요한 돌출 행동으로, 단기간 동안 집중하여 모든 역량을 승리를 위해 쏟아내야 하는 대회에서 코치진과 선수단의 불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다. 


여덟째, 손흥민의 피로 누적이다. 손흥민이 세계 최고선수 중 한 명답게 한층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주장으로서 인터뷰 때 마다 국가대표팀으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 팬들에 대한 고마움, 선수로서의 준비성을 강조해온 것은 매우 칭찬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책임감과 컨디션은 별개의 문제이다. 16강 바레인 전이나 8강 카타르 전과 같은 퍼포먼스를 내보일 바에야 그냥 본인의 상태를 냉정하게 판단하여 코치진과 선수단으로 하여금 양해를 구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어야 마땅했다. 


아홉째, 언론에도 수 차례 보도된 바, 지나치게 많은 부상 선수가 나왔다. 이는 축구협회 김판곤 위원장이 인정한 바, 의료팀의 엉성한 지원체계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벤투 감독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8강 카타르전에서의 지나치게 소극적인 전술이었다. 물론 한국이라는 강팀에 맞서는 카타르가 5백이라는 극단적 수비전술로 전반전을 체력을 아끼며 수비에 치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반전이 끝나갈 무렵 한 골을 먹고 그제서야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봤자 이미 늦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강팀이라고는 하나, 한국은 개인기에서도, 킥력에서도, 유럽 진출 선수 숫자에서도, 조직력에서도, 패스 성공률에서도, 프로 축구 저변에 있어서도,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있어서도, 그 어느 것 하나 세계는 커녕 아시아의 강팀(일본, 이란, 사우디 등)과 견주어 압도할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대표팀에게는, 2002년 한국의 히딩크, 2018년 베트남의 박항서에 의해 전개되는 것처럼, 오로지 체력과 근성을 바탕으로 후반 체력부담을 생각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이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팀을 압박하는 것만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월드컵을 맞아 지상파 3사는 2002 월드컵의 영웅 세 선수 (이영표, 안정환, 박지성)을 해설위원으로 앞세워 경쟁에 뛰어들었다. 부득이하게 SBS 라디오앱으로 중계를 들으며 박지성의 해설을 들은 바, 매우 실망스럽다.


우선 반복이 지나치게 많다. 한 문장이 길다보니 그 문장 안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면, "경각심을 가져야 하니~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라는 식이다.


둘째로 비문이 너무 많다. 주어와 술어가 조응하지 못하고, 역시 문장이 길다보니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하다. 


셋째, 잘못된 단어 선택이 많다. 특정 명사에는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특정 동사가 있는데,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게다가 명사와 동사가 헷갈리고, 능동태와 수동태가 혼용이 되니 듣기가 매우 거북하다.


넷째, 좋지 않은 습관이 많다. "~때문에", "~하는 부분" 등 선수 시절 인터뷰 때부터 지적받았던 적절하지 못한 습관을 해설위원이 되고도 떨쳐버리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경기를 중계해야할 해설자가 본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여 시청자, 혹은 청취자들의 집중을 헤친다는 데 있다. 라디오를 통해 음성으로만 들어야 한 청취자는 경기 상황 중계와 상관 없는 '한국 축구의 미래' 이야기 때문에 현재 지금 누가 볼을 소유하고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지를 전혀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 종종 있었다.


해설 내용도 문제이다. 그 자리는 해설을 하는 곳이지, 축구행정가 정견 발표 자리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걱정하고, 현재 축구인들의 각성을 촉구할 수는 있으나, 그 내용과 길이 면에서 도가 지나쳤다. 그마저도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선수로서 훌륭했다고 하여 반드시 그가 해설을 잘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배성재 아나운서는 가장 매끄러운 진행으로 칭송을 받는데, 이렇게 준비가 되지 않은 부적절한 해설위원을 추천한 배성재 아나운서도 책임이 있다. 박지성은 해설 외에 본인이 잘하는 다른 다양한 일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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