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짝' 애청자였던 사람으로서, 유사 프로그램인 채널A의 '하트시그널', SBS의 '로맨스 패키지'의 등장은 환영할 일이다. 하트시그널은 독특한 컨셉과 윤종신, 이상민, 정신과 의사, 작사가 등 패널들의 선전으로 재미를 한층 더하였고, 로맨스 패키지는 짝의 명성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그러다 연예 뉴스 기사 상위권에 tvN의 '선다방'이란 프로그램이 랭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등장인물의 한 고민이 담긴 사연 쪽지를 읽으며 양세형이 먹먹한 모습을 보이고, 유인나와 이적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래서 일단 위 기사로 화제가 된 4회를 시청하기로 했다.
현장의 연예인 패널 네 명도 조합이 탄탄해보였다. 연륜이나 인지도, 교양, 모든 면에서 중심을 잡는 리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가수 이적, 남성들의 감성을 자극할만한 유인나, 대세 개그맨 양세형, 그리고 로운이라는 청년의 훈훈한 비주얼까지...
경리단길에 아름다운 실내,외 환경을 마련한 것은 '윤식당'의 느낌이 들었고, 단기간에 이성에 대한 호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면에서 '짝'을 연상시켰으며, 마지막에 하트를 통해 상대방의 의사를 예측하는 것은 '하트시그널'을 모방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시청자들이 근래에 환호하였던 재미 요소들을 가미한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4회를 본 뒤의 소감은, 다시는 이 프로그램을 보지 말아야겠다는 것, 한 시간 여의 시청이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는 생각이다.
기존 프로그램의 인기 요소들을 한 데로 어울린 것이 결코 그 셋을 합친 것만큼의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 듯 했다. 각 요소와 프로그램의 재미가 조응하지 못했고, 저 패널의 조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은 패널들 역할의 모호함이다. 한 커플씩 선다방에 등장하면, 그 둘이 담소를 나누는 동안 패널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또 어쩌면 개입해서는 안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만남에 인위적인 느낌이 나지 않아 언뜻 좋아보이지만, 그렇다면 패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말 그대로 조금은 특별할 뿐인 진짜 다방주인, 혹은 직원이라는 컨셉으로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가? 그것도 아니다. 때때로 서빙되는 다과나 음료 메뉴도 패널들이 직접 만든 것도 아니고, 심지어 패널들이 설거지도 안 하는 듯하다. 이런 사람들이 까페 데코는 커녕 청소조차 했을리 만무하다. 다 청소된 다방에서, 이미 만들어진 다방 음료와 다과를, 녹화 직전에 나타나 한 테이블 뿐인 맞선 커플에게 제공하는 것에서 과연 무슨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두 번째는 패널의 위치이다. 커플이 서로 대화를 할 때마다 패널은 끊임 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불과 2미터나 떨어졌을까 하는 곳에서 모두가 다 들릴만한 목소리로 훈수를 두며 반응을 한다. 맞선 중인 젊은 커플이 청각에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패널들이 주고받는 평가질하는 이야기, 한숨 혹은 환호하는 리액션이 다 들릴 것이다. 내가 만일 맞선 커플 일원이라면 기분이 매우 나쁠 것 같은데, 그것도 이미 고지를 받고 와서 그런가보다 하는 듯하다. 소위 소개팅에 껌파는 이들이 네 명이나 있다. 그것도 바로 옆에서. 그리고 한 마디할 때마다 저쪽에서 "하아~(한숨)", "아유 저런 말은 왜 하나" 라는 소리가 들리면, 그나마도 강점으로 가질만한 '자연스러움'도 깨지고 만다.
세 번째는 귀와 눈이 즐겁지 않다. 어차피 다 들려서 몹시 방해될 것 같은데, 패널들은 마이크 씩이나 차고 전혀 안들릴 것처럼 출연진 코 앞에서 서로 속삭이며 대화를 한다. 작은 목소리로 소리를 내니 발음이 불명확해서 무슨 소리인지 잘 못 알아듣겠다. 따라서 시청자는 일반 예능보다 훨씬 더 자막에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이것 또한 프로그램의 몰입을 해치는 요인이다.
네 번째는 맞선을 보는 당사자들을 그다지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트 시그널'은 8명을 수십 일에 걸친 기간동안 합숙시키며 여러 회에 걸쳐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분석하면서도, 프로그램의 목적 자체가 패널들의 예측이 맞는가에 따른 상금 획득 여부에 있기 때문에, 때때로 보여지는 출연진의 비호감 행동도 프로그램, 혹은 해당 인물의 일부일 뿐인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선다방에서는 맞선 보는 두 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획득한 제한된 정보로 패널들이 열심히 출연자를 판단한다. 4회 방영분을 예로 들면, 첫 번째 맞선에서 연애경험이 없어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나가지 못하여 커플이 되지 못한 남자는, 선다방 건물을 떠나고 난 뒤 유인나의 평가처럼 '바보'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맞선에서의 남자 출연진들의 능숙한 대응으로 더욱 비교가 되며 진짜 '바보'가 되었다. 이렇게 단시간에 사람 전체를 바보 만드는 프로그램에 대체 누가 나가려는지?
다섯 번째는 예측 과정이 너무 짧고 단순하다는 데 있다. '하트시그널'의 묘미는 남녀 출연진들끼리의 호감도를 서로 다양하고 창의적인 근거를 들어 예측하는 '과정'에 있는 것인데, 그 요소는 단순히 베껴왔으면서,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발표해버린다. 4회의 경우 세 커플의 호감도를 네 명의 패널들이 예측하는데 채 1분이 안 걸린 것 같다. 이유도 없고, 이의도 없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끝.
여섯 번째는 시청자에 대한 기만이다. 나는 예능, 드라마를 보며 눈물이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감성적이고 관대해져보려고 해도, 4회 세 번째 커플 남성의 '감정 표현이 서툴러요. 하지만 이제 괜찮아요.' 라는 고민 문구는, 그 문구만으로 이적이나 유인나처럼 눈물까지 흘리기에는 그 인물에 대한 서사와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현장에서는 달랐을 수 있으나, 그 느낌을 시청자들에게도 전달해서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제작진과 패널의 역할이다. 4회는 결과적으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눈물, 마치 대단한 감동 포인트가 있는 것처럼 소위 시청자들을 '낚았다'고 할 수 있다.
일곱 번째는 부자연스러움이다. 커플의 대화에 패널의 개입이 최소화되어 얼핏 자연스러움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남녀출연진은 선택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오로지 상대방을 커플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가부일 뿐, 누가 나오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다. 매칭은 오로지 제작진에 의해 사전에 이미 결정된다. 실제 일반인들이 하는 맞선보다도 정보가 적다. 보통 맞선을 하게 되면 주선자를 통해, 혹은 업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알고, 때로는 사전에 제한된 선택지에서나마 선택권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는 제작진이 이 분위기와 사연, 나이와 배경을 통해 미리 예상가능한 그림을 만들고 사전에 매칭을 할 뿐이다.
여덟 번째는 예능의 실패를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할 수 밖에 없는 한 가지. 재미가 없다. 예측 요소가 후반부에 있음에도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더 이상 기대가 되지 않고 그만 보고 싶은 연애 예능은 아마 처음인 듯 하다.
조금만 고민을 하면 흥행시킬 수 있는 소재, 시스템, 요소, 패널을 갖추었음에도 이 정도로 엉터리인 것은 제작진의 패착이요 기획의 실패라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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