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제조기 나영석 PD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시즌2가 시작되었다. 시즌1 당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즌2의 성공이 예측되는 듯 했다. 실제로 첫 회 시청률은 꽤 높게 나온 듯 하다. 그러나 시즌1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 한편으로 시즌2 1회 차를 보는 것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던 시청자로서 몇 가지 비판점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시즌1의 성공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지성인의 정점에 서 있는 유시민의 달변과 지식에 더하여, 소설가 김영하,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카이스트 교수 정재승, 그리고 예능인 유희열이 잘 어우러진 결과였다. 여행을 하면서, 혹은 남자 여럿이 모이면서 저렇게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구나 하는 신기함과, 다양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이야기 보따리에서 끊임 없이 나왔기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번 시즌2에는 김영하와 정재승이 하차하고, 그 빈 자리에 뇌과학자 장동선과 건축학 교수 유현준이 합류하였다.


시즌2의 패착 첫 번째는 학벌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다. 시즌1 당시 김영하도 연대 경영 학사, 정재승도 카이스트 학,석,박사에 빛나는 우수한 학벌을 지닌 것은 사실이나, 그들 중에서 굳이 그것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즉, 이 생산적인 담론과 지식의 근원이 반드시 명문대 학벌, 혹은 (박사)학위와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좋은 학벌에 박사 학위까지 받은 정재승은, 그저 호기심이 참 많은 재미있는 대화상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제작진은 마치 김영하와 정재승의 하차가 불가피한 것이니 시청자들이 납득해줬으면 한다는 압력이라도 넣듯이, 장동선과 유현준이 얼마나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인가를 부각시키는 데에만 시간을 허비했다. '박사'라는 호칭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시즌1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누군가 특정 분야에 대해 놀라운 지식을 보이면, '박사네 박사'하면서 호기롭게 띄워주는 경우는 간혹 있으나, 박사라는 호칭은 엄연히 학위 과정이며,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에게만 지칭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즌1의 출연진 중 실제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은 정재승 하나 뿐이며, 시즌2의 출연진 중 실제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은 역시 장동선 한 명 뿐이다. 유현준의 경우 건축 쪽의 학위가 일반 인문사회과학 학위 과정과는 다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Doctor of Philosophy (박사)는 아니며, 석사 학위만 두 개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두 학위가 MIT와 하버드라 할지라도 그 둘 다 결국 석사학위일 뿐이다.  굳이 집착할 필요도 없는 학위에 대한 신봉, 그것은 '이 출연진들은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당신들보다 우월하다. 그들이 아는 지식은 당신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라는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의도인 듯 한데,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뿐이다. 소설가 김영하가 단지 명문대를 나왔기 때문에 시즌1에서 호평을 이끌어내었는가? 정재승이 단순히 박사학위 소지자이기 때문에 시즌1에서 재미있다, 귀엽다 라는 소리를 들었을까? 단지 학력 좋고 지식 많은 사람을 모아서 프로그램을 만들려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EBS 등을 통해 그런 다큐멘터리와 대담은 이전에도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시즌2의 패착 두 번째는 인문학과 감성의 실종이다. 이는 상당 부분 픽션 작가인 김영하의 담당이었다.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인용할만큼 김영하는 무엇보다 호기심과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자칫 지식 경쟁이 되어버릴 수 있는 지식인들의 모임 속에서 김영하는 그 빈틈을 메워주는 사람이었다. 나머지 네 사람 앞에서 만큼은 '쭈구리'가 되어버리는 예술인 유희열에게 다 기대할 수 없는 풍부한 감성적 표현과 공감을 김영하가 해주었다. 그래서 시즌1의 여행은 단순히 시청자들이 몰랐던 부분을 알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퍼즐 조각들을 모아 한 폭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마치 그 시절로 나도 돌아간 것과 같이 시청자들이 느끼던 감정선을, 안타깝게도 장동선과 유현준에게서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시즌2의 패착 세 번째는 '반응'과 '호기심'의 실종이다. 누군가가 자기 분야에 있어 지식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그것에 대해 공감해주고, 반응해주고, 그것에 이어 그 지점에서 내가 궁금해하는 점을 새로운 화두로 연결시켜 나가는 창의력과 호기심이 지식을 풀어놓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시즌2는 단순히 '내가 아는 것에 대해 나도 한 마디 하자.' 라는 지식 자랑 수준에 그치는 듯 하다. 서로 주고받는 '티키타카'의 케미가 시즌1만큼 나오지가 않는다.


시즌2의 패착 네 번째는 역사와 관련된 부분이 유시민에게로 한정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작은 소도시 위주의 1박 여행이라는 알쓸신잡 포맷의 특성 상, 역사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시즌2의 출발 역시 우리나라의 역사하면 빠질 수 없는 안동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선진지식을 습득하여 온 장동선과, 건축학자인 유현준이 역사 이야기에 대해 시즌1의 출연진과는 달리 전혀 참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시즌2의 패착 다섯 번째는 스토리텔러(이야기꾼)의 실종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하면 재미가 있어 모든 사람이 집중해서 들으며 박장대소를 하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경우가 일상에도 종종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토리텔러인 김영하, 그리고 수많은 강연에서 달변가로 꼽히는 정재승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그립다. 시즌2에서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긴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풀어나갈 수 있는 출연진은 역시 유시민 밖에 남지 않았다.


시즌2의 패착 여섯 번째는 '재미'가 없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단지 똑똑하고 지식 많은 전문가들을 모아서 프로그램을 만들 의도였다면, 그것은 이미 EBS에 많이 있다. 심야토론을 봐도 된다. 알쓸신잡은 기본적으로 예능이다. 단순하게 말해, 웃겨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 간단하다. 안타깝게도 새 출연진 둘은 '재미가 없다.'


시즌2의 패착 일곱 번째는 동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기 영역이 아닌 것에도 지적 호기심이 많고, 기본적인 역사 소양을 갖추고 있는 김영하와 정재승의 경우에는 본인이 확실히 선호하는 루트가 있었다. 그래서 다양한 지점을 출연진이 원하는 대로 간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모였을 때, 왜 나는 그 곳을 혼자라도 꼭 갈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2 1화와 2화 예고편에 보면, 시즌1의 성공과 향기에 아직도 취해있는 제작진들이 의도하는 대로 출연진들의 동선을 정해주는 듯하다. 시즌1도 출연진이 자유롭게 간다하여 제작진이 철저히 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제작진들의 아이템과 동선에 대한 개입이 너무 티가 난다.


시즌1을 보며 내내 즐겁고, 다음 편이 설레던 그 느낌이 시즌2 1화에선 그다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어느덧 '중진', '귀한 몸'이 되어버린 나영석PD가 자기들이 키워주는 나영석 사단의 junior PD들을 키워주면서, 본인이 메인에서 물러나고 상징성만 지키면서 최대한 junior PD의 자율에 맡기는 듯 한데, 안타깝게도 junior PD들이 나영석PD의 기법과 포맷만 흉내낼 뿐, 그 이면에 깔린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과 감성은 이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가장 최근의 삼시세끼란 프로도 육지에서 다 공수한 식재료로 풍부한 음식을 차려 먹으면서, 이전만 못한 시즌으로 평가받는다고 알고 있다. 나영석 기법에서 감성을 뺀 기계적인 복제는 그저 평범한 프로그램일 뿐이다. 삼시세끼란 프로그램도 나영석이 감성을 이끌어내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남이 하루종일 세 끼 밥만 해먹고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대체 뭐란 말인가? 이미 여러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면서 더 이상 모든 프로그램에 하나하나 깊이 관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진 나영석으로서는, '자기 이름을 건 자기가 빠진'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알쓸신잡 시즌2는 여러 모로 참 실망스럽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