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아시안컵 8강에서 카타르에 0:1로 패배하면서 4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슈퍼스타 손흥민이라는 걸출한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고, 벤투 감독이 부임한 이래 무패 행진을 하고 있었으며, 해외 전문가들도 다수가 한국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기에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벤투 감독이 수장으로서 최종적인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하지만, 아시안컵의 좋지 못한 성과를 벤투 감독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첫째, 벤투 감독의 부임 당시, 한국은 국가대표팀이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듣고 있던 터였다. 이렇다할 팀의 기둥도, 각 포지션별 우월한 플레이어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불운한 세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선수 구성은 지금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둘째, 벤투 감독의 부임은 이제 겨우 8개월 남짓 되었을 뿐이다. A매치 경기를 앞두고 며칠, 많게는 몇 주만 소집되는 국가대표팀의 특성 상, 8개월이라는 기간은 감독의 의도대로 팀을 만들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다. 따라서 벤투 감독에게 온전히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셋째, 아시안컵 8강에서 패배를 하여 4강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그 직전까지 벤투 호의 A매치 전적은 7승 4무로 11경기 무패였다. 한국 국가대표 감독 데뷔 후 준수한 성적을 남겼기에, 한 경기 패배만으로 그의 나머지 성과까지 가리울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선수 탓인가? 현재 한국 국가대표팀은 총체적 난국이다.
첫째, 윙백으로 나서는 홍철, 이용 등의 센터링 능력은 역대 최악이다.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의 절친이었던 에브라나, 2002년 국가대표팀의 이영표, 불륜송종국과 같이, 적절한 롱패스 및, 측면에서의 센터링을 넘겨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둘째, 수비의 핵심이던 장현수의 갑작스런 하차가 타격이 컸다. 장현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특례로 병역을 면제받은 후, 의무로 이행하게 되어있는 자원봉사 기록을 조작한 댓가로 국가대표에서 퇴출되었다. 2018 월드컵 당시 여러 차례 실점의 빌미가 되었다는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장현수는 슈틸리케, 신태용, 벤투 감독 하에서 부인할 수 없는 수비의 핵심이자 리더었다. 그가 퇴출되자 한국 수비진은 더욱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셋째, 팀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기성용의 부상이 아쉬웠다. 공격, 수비, 패스, 킥, 리더십, 소통, 굳이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부문에서 팀의 기둥 역할을 하며 코치와 선수 간 가교 역할을 하던 묵직해진 리더 성숙한 모습의 전임 캡틴 기성용의 빈 자리는 너무도 컸다. 그의 그라운드에서의 역할이 특히 패스 장인, 플레이메이커로서의 기능에 특화되어 있기에, 그의 부재로 인한 국가대표팀은 마치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를 보는 것과 같았다.
넷째, 팀에서 킥이 훌륭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주로 프리킥, 코너킥 등 세트피스 상황에서 키커를 담당하는 손흥민 또는 김진수, 부상으로 빠진 기성용을 제외하고는 명실공히 '아 저 선수는 정말 킥이 훌륭하다.'라는 평가를 받는 선수가 없다. 8강 카타르 전에서도, 내내 수세였던 카타르는 한 번의 역습 상황에서 송곳 같은 킥 한 방으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킥의 스피드와 궤적이 매우 훌륭하여, 김승규 골키퍼 뿐만이 아니라 동물적 감각을 가진 조현우 골키퍼였다 할지라도 막기 힘들었을 공이었다.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간간히 나오던 중거리슛은, 득점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지 않는 수비진을 한 번 끌어올리기 위한, 혹은 팀 내 사기 진작을 위한 시도로 보였으며 상대팀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다섯째, 이청용은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전성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청용은 한때, 당시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영리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 좋게 말하면 영리하고, 나쁘게 말하면 약아빠진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 그의 플레이는 상대팀에게는 커다란 위협이었다. 그러나 2011년 선수 생명을 위협받는 살인적 태클로 큰 부상을 입은 뒤 오랜 공백을 겪고 나온 후의 이청용은, 단 한 번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2014년의 월드컵에서는 박주영, 정성룡이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워낙 욕을 많이 먹던 그들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아웃라이어라고 할 수 있는 그 둘을 제외한다면 2014년 월드컵 최악의 플레이어는 이청용이었다. 킥은 소심했고, 패스 성공률은 매우 떨어졌으며, 돌파시도는 매번 막히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리한 플레이어라는 이유로 과거의 모습을 내심 기대하며 계속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끝내 2018년 월드컵에는 초대를 받지 못했고, 결국 벤투호의 출범과 함께 다시 중용되기 시작한다. 이청용은 여전히 현 국가대표팀 선수 중에서 가장 영리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 중 한 명이고, A매치 대표 경험이 풍부하다. 또 최근 모습이 개선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플레이는 저점을 찍었던 2014년 월드컵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2011년 커다란 부상과 함께 그의 예전 모습은 어쩌면 영원히 찾아볼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선수가 아직도 현역 대표팀 중 가장 훌륭한 선수 취급을 받으니, 현 국가대표팀이 얼마나 수준이 떨어지는가를 알 수 있다.
여섯째, 지동원, 구자철은 국가대표로 낙제점에 가깝다. 지동원은 포워드로, 구자철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누구보다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들은 비난의 중심에 있다. 감독과 팬들이 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자철은 2014년 월드컵 당시 가장 욕을 많이 먹던 박주영, 정성룡을 제외하고는 이청용과 더불어 가장 플레이의 맥을 끊어먹는 원흉이었고, 지동원은 훌륭한 피지컬을 갖추었으면서도 공격수로서 너무 존재감이 없어서 한동안 국가대표팀에 부름도 받지 못하던 선수였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시안컵에서도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문제는 그들 외에는 국가대표팀의 공격옵션이 없다시피하다는 것이다. 23인의 대표팀 중 포워드는 황의조와 지동원 뿐이다. 대체가 불가능하기에 공격이 필요할 때 울며겨자먹기로 역시 그들을 투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곱째, 이승우의 더딘 성장이다. FC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던 수 년 전의 모습에서 이승우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170도 안되는 작은 키와 얇은 몸이라는 부족한 피지컬을 극복하고도 남을 정도의 우월한 실력은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나상호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대체 선발되었기에 애초에 벤투 감독의 구상에도 없었거니와, 공격 옵션이 필요할 때, 지동원과 너무나 큰 피지컬 차이, 그리고 포워드와 미들이라는 포지션 차이로 인해 투입시키기에도 애매하였다. 여기에 보결로 선발되어 늦게 합류한 판에, 대표팀 막내로서 불필요한 돌출 행동으로, 단기간 동안 집중하여 모든 역량을 승리를 위해 쏟아내야 하는 대회에서 코치진과 선수단의 불필요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다.
여덟째, 손흥민의 피로 누적이다. 손흥민이 세계 최고선수 중 한 명답게 한층 정신적으로 성숙하여, 주장으로서 인터뷰 때 마다 국가대표팀으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 팬들에 대한 고마움, 선수로서의 준비성을 강조해온 것은 매우 칭찬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책임감과 컨디션은 별개의 문제이다. 16강 바레인 전이나 8강 카타르 전과 같은 퍼포먼스를 내보일 바에야 그냥 본인의 상태를 냉정하게 판단하여 코치진과 선수단으로 하여금 양해를 구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어야 마땅했다.
아홉째, 언론에도 수 차례 보도된 바, 지나치게 많은 부상 선수가 나왔다. 이는 축구협회 김판곤 위원장이 인정한 바, 의료팀의 엉성한 지원체계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벤투 감독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8강 카타르전에서의 지나치게 소극적인 전술이었다. 물론 한국이라는 강팀에 맞서는 카타르가 5백이라는 극단적 수비전술로 전반전을 체력을 아끼며 수비에 치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반전이 끝나갈 무렵 한 골을 먹고 그제서야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봤자 이미 늦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강팀이라고는 하나, 한국은 개인기에서도, 킥력에서도, 유럽 진출 선수 숫자에서도, 조직력에서도, 패스 성공률에서도, 프로 축구 저변에 있어서도, 유소년 축구 시스템에 있어서도, 그 어느 것 하나 세계는 커녕 아시아의 강팀(일본, 이란, 사우디 등)과 견주어 압도할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대표팀에게는, 2002년 한국의 히딩크, 2018년 베트남의 박항서에 의해 전개되는 것처럼, 오로지 체력과 근성을 바탕으로 후반 체력부담을 생각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이며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팀을 압박하는 것만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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