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이 아시아 최초로 작품에 주는 최고의 영예(최우수작품상)와 감독 개인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감독상)을 거머쥠으로서 온 대한민국, 아니 온 세계가 이 훌륭한 감독과 작품을 향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카데미는 지역적인 상일 뿐이라는 ("Academy is local") 봉준호 감독의 이전 발언에 공감하며, 기생충 못지 않게 훌륭한 이전 한국 영화들(곡성, 변호인, 밀양, 올드보이 등)이 단지 미국 중심, 할리우드 중심의 영화 산업의 특성 상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기생충 및 봉준호 감독의 4관왕은 당연한 결과이며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아카데미, 오스카, 봉준호, 기생충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에 사람들이 열광할 때, 그 찬사에 가리워진 몇 가지를 조용히 짚어보고자 한다. 기생충과 봉감독이 이룬 성과 못지 않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들을.

 

 

첫째, 이와 같은 영화의 천재이자 마스터(Master)를 탄압한 정권이 있었다. 

 

UPI뉴스: 봉준호 감독은 왜 '블랙리스트'에 올랐을까

 

국민일보: "기생충 안 봐"... 한국당이 봉준호를 외면하는 이유

 

'변호인'과 송강호, 그리고 블랙리스트…"제작사 불이익, 뚝 끊긴 섭외"

 

희대의 사기꾼이자 만고의 역적, 국민을 착취하고 더럽히면서 감히 국민의 대표자로 있었던 이명박과 박근혜는 집권 당시 문화계를 '좌파 권력이 장악한 집단'으로 정의하고 그 좌파 세력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봉준호는 그 중에서도 '강성 성향'으로 분류된 69명 중 한 명이었다. 영화 '괴물'은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하는 영화', '살인의 추억'은 '공무원, 경찰을 부패, 무능한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하는 영화', '설국열차'는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기는 영화'로 평가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괴물을 만들어 국민을 욕보이고 역사의 대죄를 저지른 공범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여전히 봉감독에 대한 인식이 그 수준에 머물러 있어,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 기생충으로 수십, 수백 개의 전 세계 영화상을 휩쓰는 동안 축하 논평조차 낸 적이 없다. 기생충은 자본주의의 폐해인 빈부 격차, 나아가 계급 간의 갈등 (하층민과 최하층민 간)을 소재로 삼고 있기에 그들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영화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가장 창의성이 자율적으로 발휘되어야 할 문화계에, 좌파로 낙인찍고 지원을 끊는 한편 의도적으로 우파 문화 세력을 만들어 육성하고자 했으니, 방법이 유치하고 역겨운 것은 둘째치고,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는가를 믿었다는 그들의 어리석음이 더 놀랍다. 

 

봉감독 뿐만이 아니라 기생충의 아버지 기택 역을 맡은 송강호, 기생충의 투자배급 총괄 대표인 CJ의 이미경 부사장 모두 이명박 박근혜 무뢰배들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공통점이 있다.

 

다행히도 이들은 그 무뢰배들이 무너뜨리고자 한다고 무너질 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봉 감독은 이미 CJ 등을 통해 자유로운 영화 제작에 필요한 탄탄한 재정과 인력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하마터면 이처럼 능력 있는 예술인들을 지원은 못해줄 망정 정부가 앞길을 가로막을 뻔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와 똑같은 사고 체계를 가진 역적 도당들이 자유한국당, 미래한국당, 새보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총선에 또 명함을 들이밀고 있다.

 

 

둘째, 봉준호 감독은 공정한 근로조건과 배우, 스태프들 처우 개선을 통해서 오히려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2016년, 인기를 끌던 혼술남녀를 담당하던 tvN의 신입 PD이자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과도한 업무, 갑질, 권위적인 조직문화, 폭언, 가족을 향한 협박 등 이 사회의 비뚤어진 조직문화와 문화예술계의 민낯이 낱낱이 공개된 사건이었다. 안타깝게도 꽃다운 20대에 유명을 달리한 이PD의 죽음 이후에도 방송, 영화계에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 일부 톱스타는 제작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엄청난 출연료를 챙기고, 그들조차도 척박하고 급박한 촬영 스케줄에 쫓겨 수면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일을 한다. 그리고 이후에 예능 프로그램 등에 나와 이처럼 열심히 일했노라고 무용담처럼 자랑한다. 톱스타들이 이럴진대, 무명의 스태프들의 근로조건은 오죽하겠는가. 2013년에는 1년 동안 제작사에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영화제작사의 한 근로자가 목숨을 끊었다. 2018년에는 과로에 시달린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미술 담당 스태프가 숨을 거두었다. 젊은 꽃들이 이렇게 스러져 갈 때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여전히 촬영 기간 중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태프에 52시간 근무 보장

 

반면, 봉준호 감독은 위 기사에 드러난 것처럼 표준근로계약서를 맺고 주 52시간 근로를 보장했다. 그가 설국열차와 옥자를 찍을 때 할리우드와 협업하면서 미국의 노동조합 규정에 따라 촬영 스케줄을 맞춰갔던 것이 경험으로 남은 것이다. 이 외에 봉준호 감독과 함께 일한 배우들의 증언을 통해 봉준호 감독이 어떤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에게서는 이한빛PD 자살의 원인이었던 tvN에서 보여진 과도한 업무, 갑질, 권위적인 문화, 폭언,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가만,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당연한 것이 특이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 그래도 봉 감독은 의미있는 진일보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봉 감독처럼 성공한 감독이었기에, CJ 등과 같은 자금력이 어마어마한 제작, 유통사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투자자들은 적은 인풋으로 성과를 극대화하기 원하고, 한정된 시간과 자원에 쫓기는 현장 제작자들은 예능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의 팀원들을 압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봉 감독과 같은 한 개인의 변화만으로는 이한빛PD와 같은 안타까운 피해자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셋째, 한국 최초의 노미네이트. '기생충' 말고도 '부재의 기억'을 기억하자.

 

아카데미 주요 부문 6개 부문 후보, 가장 중요한 4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기생충(Parasite)! 각 부문 한국 최초 노미네이트 내지는 아시아 최초 수상으로 굉장한 업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기생충이 가장 밝게 빛난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시 한국 최초로 단편 다큐멘터리상에 후보로 오른 작품이 있었다. 바로 세월호를 다룬 '부재의 기억' (In the Absence). 30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세월호 침몰과 그 이후의 상황을 기록했다. 봉감독과 배우들이 레드카펫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을 때, 부재의 기억 연출자와 세월호 유가족 두 명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모든 언론이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을 극찬하는 기사를 앞다투어 쏟아낼 때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지만), 한국 최초로 미국 한복판에 세월호 침몰의 억울함, 국가 권력의 부패함을 알린 이 다큐에 대한 찬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왜 '부재의 기억'에는 찬사를 보내지 않는가? 언제부터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후보에 오름)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는가? 기생충은 결국 일부 가족 구성원의 살해, 죽음, 감금으로 끝났지만, 아들 역(최우식)을 통해 아득할지언정 작은 희망도 선사했다. 그러나 부재의 기억을 통해 얻는 희망은 무엇일까?

 

정부가 답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국가가 부재하지 않을 것임을. 진상은 끝끝내 밝혀낼 것임을.

검찰과 법원이 답해야 한다. 억울한 생명을 사지로 몰아넣은 부패한 이들이 여전히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는 이때에, 이들을 엄정히 단죄할 것임을.

국민이 답해야 한다. 양심 없는 부패한 지도자와 한패이고, 여전히 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다시는 스스로의 입으로 '국민의 대표'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끔 선거에서 투표로 보여줄 것임을.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이 가져다준 낭보에 함께 기뻐하며, 위 세 가지도 국민들에게 못지 않게 각인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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