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의 오랜 팬으로서, 조금씩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그의 정계 복귀설이 나오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젊은 날 항소이유서를 읽고 감탄했고, 그가 정치인으로서 TV토론에 나올 때 열광했으며, 그가 노무현을 위해 눈물 흘릴 때 함께 울었다. 그의 책은 맛있는 국밥과 같았고, 그가 썰전, 알쓸신잡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한 이야기들은 좋은 반찬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가 노무현, 문재인을 이어 대통령이 된다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정계복귀설에 관해 완강히 부인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기 대선 여론조사부터, 유시민의 정계복귀에 관한 여론조사에 이르기까지 민심을 파악하기에 바쁘다. 그는 본인이 노무현 재단을 통해 최근 시작한 개인방송(유튜브, 팟케스트), '알릴레오'의 '고칠레오'라는 코너를 통해 본인의 정계 복귀 거절 의사에 관해 조목조목 이유를 들었다. 그가 들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통령은 매우 힘들고 고된 자리이기에, 지금처럼 본인이 하고 싶은 말과 글을 마음대로 담을 수 있는 삶보다 개인적으로 나을 것이 없다. 둘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즉 정치인의 삶을 살려면 타인의 마음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매우 조심스럽게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 따라서 과거에 그러한 부담을 가족들에게 안겨줬던 사람으로서 또 다시 그러한 부담을 주긴 싫다. 셋째,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반드시 대통령(또는 정치인)이라는 지위에서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 세 가지가 모두 일리가 있고, 유시민 작가의 삶의 족적을 보았을 때 충분히 진심이 담긴 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셋째 이유는, 내가 안철수가 최초 정계 진출 선언을 할 때 가졌던 의문과 동일하다. 정계 데뷰 시 안철수가 정치인으로서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던 것들은, 당시 안티도 없고 옹호자도 많았던 그 시절, 그의 위치에서 충분히 다른 방법, 다른 모양으로 달성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꼭 대통령(정치인)이 되고 싶어하지?' 하는 것이 내가 안철수의 정계 진출 당시 강하게 가졌던 의문이었다. 물론 그 의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왕 정치를 할거면, 왜 정치 행위 자체를 악마화, 죄악시하지? 어떻게 정치를 하겠다면서, 본인도 그 정치 행위를 함께 치열하게 할 생각, 혹 더 나은 정치행위로 변모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새정치'란 미명 하에 그저 '정치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지?' 하는 의문으로까지 계속 이어졌다. (안철수에 대한 비판은 워낙 끝이 없어 여기서 그만)
유시민 작가가 정계 복귀, 또는 차기 대통령이 되기 어려운 가장 큰 현실적인 요인은 현 민주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현 민주당에서 소위 '유시민 세력'을 찾아볼 수 없다.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유시민을 좋아하는 무리가 별로 없다. 이순(耳順)에 다다른 지금과는 달리, 본인의 지나치게(?) 뛰어났던 지식과 두뇌로 인해, 그의 정치인 시절은 매우 곧았고, 타협하지 않았다. 그의 직설화법과 상대방의 오류를 찾아내어 지적하는 논리와 태도는, 비단 타 정당 뿐만 아니라 같은 민주당 내에서도 거부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탄핵 의결 등 제도권, 심지어 같은 당 의원한테조차 임기 내내 무시와 하대에 시달려온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미에 주변 인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 고립되어있던 인물 중 한 명 역시 유시민이었을 따름이다. 더구나 그 이후 유시민은 국민참여당 창당, 통합진보당 합류, 정의당 합류 등으로 민주당과는 계속 다른 노선을 걸었다. 불가피하게도 현대 정치 하에서 정당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이 본인은 정치를 할 의사가 없었고, 당시는 물론 현 민주당 세력과도 매우 이질적인 존재였음에도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박근혜의 국정농단, 이명박의 부패와 비리 등을 통해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촛불혁명이 다른 사람도 아닌 오직 문재인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예외적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둘째, 첫째와 비슷한 이유로, 차기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설령 국민이 원한다 해도, 지금쯤은 정계를 복귀해서 적어도 2년 동안은 당 내 본인 기반을 다져야 대통령 후보가 될 동력을 얻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불편한 동거이긴 했으나, 이질적인 민주당 내에서 당 대표를 역임하며 끊임없는 설득, 반목의 과정을 거쳐 국민의 당 세력이 이탈하고, 당 내 통일된 동력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유작가 본인이 정계 복귀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2년 여 후 대선에 임박하여 하루 아침에 어떻게 당 내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셋째는 이해찬이라는 구시대적 보스 정치 리더십의 당대표 때문이다. 이해찬은 '선거의 귀재'라는 별명 답게, 본인이 짠 선거 전략으로 당선을 시킨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본인의 정치 이력의 종착역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당 대표에 오른 데에는, 본인의 역량으로 차기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까지 책임지는 소위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이해찬에게 유시민은 자기의 정치 후배일 뿐이고, 참여 정부 당시 본인이 국무총리인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에 불과했던 부하일 뿐이며, 자신의 권유에 의해 노무현 이사장을 넘겨받은 한 수 아래일 뿐이다. 민주당 내 모든 의사결정에서 이해찬 개인의 입김이 매우 강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도록 민주당이 보스정치로 회귀한 상황에서, 유시민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는 쉽지 않다.
유시민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정계를 은퇴함으로서, 우리는 훌륭한 정치인이 정부에서 국민을 위해 이바지할 기회를 놓쳤지만, 동시에 훌륭한 문장가로서의 유시민이 넉넉한 여유를 두고 본인의 생각을 글로 정리함으로써 우리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수혜를 얻었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기회비용이 무척 큰 것이 사실이나, 돌아온 과실 역시 풍성하기에 정치인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반갑다. 단, 그가 알릴레오 방송을 통해 강한 부정 속에서도 단서를 달았던 것은, '예전에 왕이 부르면 무조건 관직을 맡아야 했는데, 요즘같은 민주주의 하에서는 국민이 왕이므로, 국민이 부르면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라는 고백이다. 물론 그마저도 '왕의 부름'을 고사하는 방법에는 꾀병 등 여러가지가 있다라며 웃어넘겼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어떤 형태로든 오래 국민 곁에 존경할만한 이로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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