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즈 히로(Kazu Hiro), 또는 카즈히로 츠지(Kazuhiro Tsuji)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2017년 (Darkest Hour)에 이어 Bombshell이라는 작품으로 또 다시 아카데미 분장상, 정확히는 Academy Award for Best Makeup and Hairstyling (최우수 화장 및 헤어스타일 연출상)을 수상했다. 세계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할리우드에서도 아카데미 분장상의 영예를 두 번이나 얻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이니 그 실력은 업계 최고임이 분명하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맨인블랙 시리즈부터 혹성탈출, 링II,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헬보이, 지아이 죠 등이 있다. 그는 유수한 영화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참여한 뛰어난 실력자이다.
공동 수상이지만, 수상 소감이나 백스테이지에서의 기자들의 대응 태도, 그리고 거기서 나타난 존재감을 볼 때, 누가 봐도 그 중 카즈 히로가 메이크업 팀의 리더였음이 분명했다. 심지어 2017년, 2019년 각각 3명씩 공동 수상인데, 카즈 히로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공동 수상자는 해마다 다르다. 조금 과장해보면, 카즈 히로와 그의 팀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런 그가 수상 소감을 말할 때나 이후 백스테이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때, 동문서답이라 할 정도로,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마치 반복 녹음 테이프를 틀어놓은 것 마냥 몇 번이고 비슷한 말을 반복하여 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훌륭한 사람들과 같이 협업하는 것이 즐거웠다.'라는 말이었다. (비록 자신이 리더였을지라도) 훌륭한 사람들, 좋은 동료들과 함께 동등한 위치에서 힘을 모아 작업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과정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두 번째 오스카 분장상 수상 후 백스테이지 기자회견장에서 토시오 오카타라는 아사히 신문의 일본 기자가 카즈 히로에게 질문을 했다. 그의 두 가지 질문 중 후자는 다음과 같다.
일본 기자: "일본이 전승해온, 당신의 일본에서의 (분장 혹은 영화산업 종사) 경험이 당신의 두 번의 (오스카) 수상에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본 기자가 어떤 의도로 질문을 던졌는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기자는, 훌륭한 장인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일본의 기술과 산업이 최고다! 라는 일본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카즈 히로로부터 일본에서의 소중한 경험이 오늘날 나를 만들어냈다는 식의 겸양과 일본에 대한 찬사에 대한 기대로 이 질문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카즈 히로의 덤덤하고도 공손한 말투에서 나온 답변은 일본 기자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카즈 히로: "You know what, I am sorry to say, but I left Japan and became an American because I got tired of this culture. Too submissive and you know too hard to make a dream come true. Sorry."
(사실은요.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나는 일본을 떠나 미국인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 문화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지요. 지나치게 복종적인 문화 말입니다. 그리고 꿈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미안합니다.)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왜 카즈 히로가 각종 수상 소감과 기자 회견마다 반복해서 함께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즐거웠다는 것을 강조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업계의 일본식 조직 문화를 벗어나, 좋은 사람들과 수평적이고 동등한 관계에서 팀을 이루어 협력하여 일을 완수해 내는 것이 훨씬 보람차고 본인에게도 어울리는 것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은 카즈의 이 발언으로 난리가 난 모양이다. 한국은 이제야 아카데미 첫 수상자가 나와 온 언론이 들썩이는 마당에, 일본 출신으로 이미 2년 전에 아카데미에서 수상하고 또 수상자가 된 카즈 히로에게서 일본에 대한 찬사를 듣고 싶은 기대가 컸을텐데, 그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와버렸으니. 그것도 아주 젠틀한 톤으로.
그렇다면 한국은 일본 사정이라고 마냥 고소하게 여길 일인가? 안타깝게도 '그게 아니올시다.' 이다. 카즈의 간결한 발언은 비단 일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아시아 문화예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압적이고,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문화 예술계의 사정. 한국이라고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었다. 과도한 업무, 갑질, 권위적인 조직문화, 폭언, 가족을 향한 협박으로 인해 tvN의 이한빛 PD가 자살한 사건, 갑의 위치에서 열정페이를 넘어 노페이(무보수)로 꿈많은 젊은이들을 착취한 패션업계, 1년 동안 제작사에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영화제작사 근로자의 자살...
공교롭게도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한 여러 동양인 중 한국인인 봉준호 감독, 일본인인 카즈 히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두 위 강압적이고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옥자, 설국열차를 통해 배우 노동조합이 자리잡은 할리우드의 선진문화와 일을 해본 경험을 기반으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주 52시간 근무를 준수하며 기생충을 제작한 봉준호 감독, 좋은 사람들과 만나 함께 협력하여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고 계속하여 강조하는 카즈 히로 아티스트. 이 둘이 문화예술계의 정점에 선 것이 단순히 우연일까. 투자자의 압박, 창작의 고통, 기한이 주는 스트레스, 모든 관련자들을 조율해야 하는 어려움. 이 모든 것을 '권위주의'와 '강압'이 아닌 '공정'과 '수평적 관계'로 풀어낸 봉준호 감독과 카즈 히로 아티스트가 최고의 성과를 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과를 낸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정답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아시아의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곱씹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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