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빅피쉬'라는 낚시 프로그램이 새로 탄생했다. 일단 4부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으니, 시청자들 반응을 보고 정규 편성을 고려하는 듯 하다. 

 

1화를 보고 든 생각은, 이 프로그램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너무 엉성한 요인 투성이라 이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이미 김교석 칼럼니스트가 나에 앞서 독설을 날렸다. '전설의 빅피쉬'에게는 독미끼가 된 이태곤의 원맨쇼'  내가 가진 생각과 유사한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그 몇 가지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시어부와의 외적 유사함으로 인해 프로그램의 신선함이 떨어졌다. 둘째, 정글의 법칙을 오랫동안 연출한 PD가 김병만 중심의 예능을 전설의 빅피쉬에 이태곤 중심의 예능으로 이식했는데,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졌지만 묵묵히 일을 하는 김병만의 조력자 리더십과는 달리, 낚시에 관해서는 이태곤만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데다 이태곤 특유의 카리마스형 리더십은 밸런스 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도시어부에서와 같이 그 강력한 카리스마를 견제할 수 있는 이경규와 같은 캐릭터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어부도 아니고 정글의 법칙도 아닌 어중간한 예능일 뿐이라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고 공감이 가는 핵심 지적사항들이다. 이에 더하여 내가 느낀 부정적 요인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첫째, 제작진의 낚시에 대한 몰이해다.

 

낚시 매니아인 이태곤, 그리고 나름의 낚시 경험을 가진 지상렬을 제외하고 나머지 셋 (정두홍, 김진우, 윤보미)은 낚시 경험이 전무하다. 이들을 데리고 만든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단 하나, 빅 피쉬(big fish), 즉 대어(大漁)를 낚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낚시를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낚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물고기를 잡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다. 분명 결국 물고기를 잡게 되면 기쁨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같은 방송사 인기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 역시 낚시 애호가인 구본승이 한 말은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무엇인가를 조금 짐작케 한다.

 

강경헌: "오빠는 낚시가 잡혀서 재미있어요, 과정이 재미있어요, 아니면 기다리는게 재미있어요?"

 

구본승: "그게... 조금씩 다 재미있지. 과정도 재미있고... (강경헌: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고), 너무 안 잡혀도 재미가 없고, 너무 잘 잡혀도 재미가 없어. 또, 올 때마다 잘 잡히면 재미가 없어."

 

- SBS '불타는 청춘' 中

 

낚시를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왜 낚시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아마 수십가지 이유를 댈지도 모른다. 내가 잡은 물고기를 싱싱하게 먹고 싶어서, 진귀한 물고기를 힘들게 잡았다고 술자리에서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기 위해서, 바쁜 일상에서의 복잡한 마음을 떨치고 잠시 나만의 공간과 시간에서 침묵할 수 있는 기회를 나 자신에게 보상으로 주고 싶어서, 낚시 하면 거의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자연 속에서의 캠핑의 낭만을 누리고 싶어서, 살면서 목표한 것을 얻기 위해 늘 분주하고 조급했던 나 자신에게 꼭 바라던 것이 손에 쥐어지지 않더라도 그 결과를 덤덤히 받아들이는 인생의 지혜를 몸으로 습득하기 위해... (쓰려면 정말 수십가지가 나오니 여기서 그만하도록 하자.) 도시어부에서는 수십년째 낚시터를 찾을 때마다 부친이 살아계실 적의 추억을 간직하며 굴곡과 인내가 필요했던 인생과 낚시가 겹쳐보이는 이덕화의 존재를 예능에 맞게 밝은 모습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전설의 빅피쉬는 이 낚시의 깊은 맛과 수십 가지 존재 이유를 무시하고, 그 중 오직 한 가지, '물고기를 잡는 것', 그것도 '큰' 물고기를 잡는 것으로 목표를 극단적으로 협소하게 설정을 해버렸다. 전설의 빅피쉬에서 이태곤이 낚시 초보인 김진우와 윤보미에게 잡고나서 "직접 손맛을 보니 낚시 재미있지?" 라고 한 말은, 낚시의 수십가지 재미 중 하나를 언급했을 뿐인데,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프로그램은 그려낸다.

 

낚시를 규정할 수 있는 수많은 말 중에 아마도 낚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빅피쉬', '성공', '1등', '짜릿함' 이란 단어가 아니라, '기다림', '공백' '인내', '인생'과 같은 단어일 것이다. 도시어부의 장시원 PD는 본인이 낚시 경험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서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질문자: "낚시에는 공백이 많다. 예능으로 풀기 쉽지 않은데.

 

장시원 PD: "낚시채널들이 몰려 있지 않나. 우연히 그걸 보게 됐는데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더라. 어떤 식으로 낚시를 하고 방송을 만들려는 건지. 방송에서 하루 종일 낚시를 하는데 고기가 안 나오더라(웃음). 특히 낚시를 하는 어떤 한 아저씨한테 감정이 이입됐다. 정말 잡았으면 좋겠는데 계속 못 잡더라."

 

"세 명이 왕포에서 낚시를 하는데 폭망이었다. 찍자마자 나도 ‘아 이건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했다. 세 시간 동안 똑같은 그림만 찍고 있으니까(웃음). 근데 대화는 점점 달라지는 거다. 고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중요하구나 느꼈다. 촬영 내내 ‘큭큭’ 거렸던 것 같다. 출연진이 이건 다시 촬영해야 하는 건 아니냐고 얘기하는데도, 그것조차 재밌었다. 오히려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고 할까."

도시어부’는 고기를 잡지 못하는 날, 오히려 시청률이 더 잘나오기도 한다. 그 속엔 출연진 세 명의 호흡이 숨어 있다.

중앙일보 '기다림의 미학이 예능으로…PD가 말하는 '도시어부' 뒷얘기' 中

 

이처럼 도시어부가 파악한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낚시의 핵심과는 달리, 전설의 빅피쉬는 낚시를 '빅피쉬를 잡기 위한 경쟁'으로 정반대로 해석해버렸다. 바쁜 경쟁사회에서 낚시를 통해 일탈과 휴식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낚시에서 마저 조급함을 느끼게 한다. 금뱃지라는 인센티브로 긴장감을 조성하면서도, 가장 낚시경력이 많은 이덕화가 가장 허탕을 칠 때가 많은데도 이를 인생과 대비하여 유쾌하고 구수하게 풀어가는 도시어부와는 방향성이 너무나 다르다. 낚시를 좋아하는 이마저도 공감하거나 좋아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낚시가 생소한 대중이 좋아할 수가 있을까?  

 

 

둘째, 이름이 모든 것을 규정한다. 

 

결국 첫 번째 이유와 같은 내용인가. 아주 간단하다. '도시어부'의 주체는 '인간'이고, '전설의 빅피쉬'의 주체는 '물고기'다. 낚시를 통한 인간의 내적, 외적 활동을 조명하는 도시어부와 달리, 전설의 빅피쉬에서는 큰 물고기를 잡는다 라는 목표 외에 나머지는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차라리 이렇게 이태곤 일색이 되어버릴 것을 예상했다면, '이태곤의 낚시 원정대'나 '이태곤의 낚시 탐험'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최소한 '스몰피쉬'도 잡을 수 있는 유연성을 발휘했을텐데. (실제로 낚시의 매력은 반드시 큰 물고기를 낚는 데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예: 참돔)

 

 

셋째, 시청자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든다.

 

낚시 애호가들이 낚시TV나 도시어부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정말 재미있겠다. 나도 한 번 저렇게 꼭 시간을 내어 낚싯대 홀연히 챙겨매고 한 번 떠나보고 싶다." 정도가 될 것이다. 반면에 오로지 물고기 크기에만 집착한 '빅피쉬' 잡는 것을 목표로 한 설정은 지역적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오직 물고기 사이즈에 입이 떡 벌어질만한 낚시장소는 주로 해외가 될 수 밖에 없다. 즉 서민으로서는 감히 꿈꿀 수 없는 세계를 조명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내 돈으로는 저런데 언제 한 번 가보겠나. 지들끼리 좋은데서 잘 노네. 물고기는 크긴 크네. 이번 주말에 동네 낚시터나 가야지." 이 정도일 것이다. 즉 낚시애호가들로 하여금 공감은 커녕 상대적 박탈감만 느끼게 한다.

 

출연진이 식재료 구매부터 음식 만들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졌던 '윤식당'에 열광했으나, 모든게 이미 세팅되어있는 상황에서 출연진이 서빙하는 것에 그쳤던 '선다방'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듯이, 실제 낚시애호가들이 출조할 때처럼 모든 것을 전날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출연진이 다 준비하는 도시어부와는 달리, 제작진이 다 벌려놓은 판에 마지막 낚싯대 릴링만 하는 정도의 전설의 빅피쉬에서는 진심을 느끼기 힘들다. 

 

 

넷째, 낚시인의 금기를 범했다.

 

어느 장소에서 어떤 물고기를 낚았다고 무용담을 즐기는 낚시 애호가들 사이에서 자존심 빼면 시체 아닐까. 그 허세와 같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낚시를 한 결과물이 온전히 본인의 기록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낚시 도구 준비 (찌 세팅, 낚싯대 손질 등), 미끼 만들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캐스팅, 채기, 릴링 이 세 단계만큼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해내야 할 것이다. 도시어부에서 다른 연예인에게 처음 입질이 왔을 때 옆에서 선장이나 낚시프로가 살짝 잡아준 것만으로도 이경규의 강력한 항의로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이경규의 예민하고 호통치는 캐릭터와 겹쳐지긴 했지만, 그것을 걷어내고라도 공정한 기록 경쟁을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다. 반면 전설의 빅피쉬는 프로그램 타이틀부터 '빅피쉬'를 잡기 위한 경쟁 프로그램임을 표방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공정한 경쟁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조건조차 외면하였다. 애초에 옆에서 도움을 주지 않고서는 혼자 낚싯대 운용조차 어려운 생초짜 아이돌들을 얼굴마담으로 불러놓고 낚시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과업이었다.

 

 

다섯째, 이태곤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다. 

 

이 부분에서는 이 글 초반에서 언급한대로 김교석의 칼럼에서 이미 아주 날카롭게 지적했다. 김병만은 전지전능함에 가까운 압도적인 생존능력을 가졌지만 그것을 굳이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조력자 리더십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태곤의 카리스마형 리더십은 시청자가 계속 지켜보고 있기에는 너무 쉽게 질리고 피곤해진다. 도시어부에 출연했을 때도 나이 차이가 각각 25살, 17살 차이가 나는 대선배인 이덕화와 이경규에게도 형님이라는 호칭 외에는 거침 없이 반말을 했던 이태곤인지라, 전설의 빅피쉬에서도 어김없이 카메라에 잡히는 모든 사람들, 즉 PD, 작가, 카메라맨, 출연진 전부에게 반말로 일관한다. 이를 견제하고, 때로는 익살스럽게 디스를 해서 시청자로 하여금 통쾌하게 만들었던 도시어부의 이경규와 같은 존재가 없는 상황에서는 이태곤의 태도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 상, 무례한 모습으로 비춰질 뿐이다. 사기꾼 마이크로닷이 도시어부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대선배인 이경규 이덕화 앞에서 깍듯이 예의를 갖추면서도 한국어가 서툴러 간간이 터지는 하극상 실언(?), 그리고 큰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형님'이라고 불렀던 호칭에서 오는 신선함이었다. 이태곤의 캐릭터가 연출하는 모습은 그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물처럼 뻔한 예측이 가능하다. 

 

도시어부에서 핵심 출연진이 이경규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십 년 간 예능의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이경규라는 코미디언의 존재는, 사실 그 본 모습을 들여다보면 한 없이 지루한 시간 싸움이 대부분인 낚시라는 종목에서 너무나 귀중한 캐릭터이다. 심지어 정글의 법칙의 묵묵한 조력자 리더십을 보여주는 김병만마저도 개콘 최장수 프로그램 출연자이자 예능 대상 출신의 코미디언이 아닌가. 대체 이태곤을 중심으로 예능에서 뭘 해보겠다는 것인지?

 

 

여섯째, 캐스팅의 실패: 이태곤 외 나머지 캐릭터들이 무색무취하다.

 

대체 PD가 멤버들을 섭외한 기준이 무엇일까? 전문연출가인 만큼 충분히 스태프들과 협의를 거쳐 예상되는 출연진들의 캐릭터와 출연진들 간 케미를 사전 구상을 해보았을텐데, 이토록 실망스럽다니. 단지 도시어부에 출연한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도시어부에서 이덕화와 이경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아주 사이 좋은 형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둘 사이는 웬만한 군대보다도 엄격한 위계와 무시무시한 규율이 존재하였던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다. 아마도 수십년 전, 이덕화의 각목 앞에 이경규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주체 못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친한 것 같지만, 이렇게 묘한 긴장감과 오랜 사연을 가진 두 출연진이 이젠 서로 각 분야의 대가가 되어 낚싯대 앞에서 유쾌하게 서로를 향해 견제를 날릴 때 흐뭇함을 자아낸다. 그런데 훈남 비주얼에 비해 예능감이 전혀 따라오지 않는 김진우, 아무래도 남자 시청자가 많을 수 밖에 없는 낚시 프로그램에서, 골목식당의 조보아처럼 청량한 매력을 보여주어야 할 홍일점 역할에 한참 못 미치는 안 예쁜 윤보미, 그리고 정두홍은 딱히 캐릭터를 만들 수도 없을만큼 무색무취한 모습을 보여준다. 각종 프로그램에서 게스트 패널로서 맹활약을 하는 서브 메인에 가까운 지상렬도 여기에서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일곱째, 도시어부의 표절인가?

 

이태곤은 도시어부 초창기의 수훈 연예인이고, 지상렬, 김진우도 도시어부에 출연한 이력이 있다. 도시어부의 특징 중 하나는 예능프로그램이라는 것이 트렌드와 젊은 층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데, 고령의(1942년생) 유강진을 성우로 기용한 파격이었다. 즉 도시어부 제작진은 낚시라는 종목에서 풍기는 중년 느낌의 푸근한 정서를 정확히 읽어낸 것이다. 전설의 빅피쉬 역시 중년들도 그 목소리에 매우 익숙한, 나이 지긋한 성우 (이름은 모름. 실제 프로그램이나 홈페이지에서조차 전혀 밝히지도 않음)를 기용하였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여덟째, 그 밖에 도시어부보다 못한 점들

 

도시어부의 자막 센스는 절대강자였던 무한도전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프로그램 중에서는 탑 급에 속한다. 일례로 종종 나오는 축구 관련 드립을 보면, 소위 축구 덕후가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해외 축구선수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느껴진다. 타이틀(전설의 빅피쉬)에서부터 느껴지는 오글거림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제작진들이 도시어부 제작진들과 같은 자막 센스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꼭 정규 편성이 되면 좋겠다. 표절과 준비부족으로 프로그램이 얼마나 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딱 알맞는 예가 될 것이기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