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시리즈는 명작이다. 신원호 PD가 예능PD로서 갈고 닦아온 실력이 정극 연출에서도 발휘됨으로서 작품이 흥행과 재미, 감동 모두를 움켜쥐는 큰 성공을 이루어냈다. 개인적으로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표절'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설정, 연출 면에서 많은 부분을 카피했다는 점은 큰 불만이다. 신원호 PD가 모티브로 활용했다고 솔직히 인정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응답하라 1997 (응칠), 응답하라 1994 (응사), 응답하라 1988 (응팔). 각 작품이 모두 훌륭하고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이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끌리는 작품을 꼽으라면 그래도 응답하라 1994가 아닐까 한다. 응칠은 성동일 부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스토리가 정은지, 서인국을 중심이었고, 응팔은 젊은 학생들 뿐 아니라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의 이야기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반해, 응사는 철저히 대학생인 친구들 (정우, 고아라, 유연석, 손호준, 김성균, 바로, 도희) 중심으로 대부분의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공감을 더 불러일으켰다.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인 응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보다 학생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철저히 감추어졌다는 것이다. 응사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연대 94학번이다. 학생운동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96년 백양로의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 노수석 열사가 사망했던 그 치열한 기록에, 응사의 주인공들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응사는 그 이야기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치열했던 그 시절의 얼마 안되는 흔적이라고는 응답하라에 간간히 울려퍼진 민중가요 뿐이다. 1화에서 삼천포가 길을 헤메다 의심을 받아 간 경찰서에서 투쟁하던 이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었고, 친구들이 삼천포에 다 같이 내려가 삼천포-사천 시 통합 분쟁 장면이 나오면서 민중가요 '바위처럼'이 율동과 함께 완창되었다는 것이다. 장면이 바뀌고 진압병력들이 들어올 때 잠깐 전설의 민중가요 '불나비' 후렴구도 스피커에서 울려퍼진다. 


응사에서 1995년의 유명한 사건인 삼풍백화점 사건을 이용한 에피소드가 있다. 삼풍백화점을 간다고 집을 나선 칠봉이 연락이 두절되고, 때마침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뉴스에 보도된다. 나정은 칠봉을 무척 걱정하고, 나중에 재회한 그들은 그제야 안도의 눈물을 터뜨린다. 이 위기상황을 그려낸 상황이 삼풍백화점이 아닌 1996년 연세대 사태였다면 어땠을까. 


응사가 신촌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의대도 있고, 야구부도 있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수월했고, 여러 대학교가 모여 있는 곳인데다 대학생들의 유흥지로서의 상징성이 있어, 시청자들의 대학생활에 대한 공감과 추억이 무기였던 응사에서 공통분모를 가장 많이 찾을 수 있는 지역이라는 판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른 캠퍼스도 아닌 '신촌 하숙', '연세대'를 배경으로 하여 '1994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그 시절의 핵심 사건인 치열했던 학생운동을 완전히 생략해버린 판단이 무척 아쉽다. 제작 및 방영시점이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됨으로 인하여 표현의 자유가 마치 군사정권 시절처럼 말도 안되게 제한을 받던 시절이라 정권의 눈치를 봤기 때문일까? 문화영역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2013년, '임을 위한 행진곡', '불나비'와 '바위처럼'이라는 민중가요가 등장한 점을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쓰레기와 나정이, 칠봉이와 삼천포, 해태, 정대만과 빙그레는 1996년 뜨거웠던 교정을 어떤 모습으로 맞이했을까? 이 사건에 대해 하숙집에 모여앉아 술을 건네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응사에서 생략된 이 모습은 철저히 시청자들의 상상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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