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이하 유퀴즈)이 시작한지 벌써 햇수로 5년 째가 되었다. 매번 챙겨본 것도 아니고, 가끔 몇 편 지난 회차 챙겨본 게 다이지만, 어느새부터인가 흥미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 와중에, 대통령 당선인인 윤석열의 출연으로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당선인 본인부터 처가에 이르기까지 워낙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 기간동안 특정 언론이나 특정 모임, 해명 요구 등에는 응하지 않는 불통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을 결정했다는 것이 무척 뜬금 없다. 더구나 당선인의 소속 정당이 유재석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무한도전을 제작한 MBC가 블랙리스트, 방송 장악 등으로 무자비한 탄압을 받던 시절의 가해자였음을 생각할 때, 이를 수락한 유재석에게도 일부 대중은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일본의 과거사 잘못 문제라든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대하는 시각에 있어, 그래도 윤석열 혹은 그가 속한 정당이 표방하는 가치와 결이 다른 행보를 보여주었던 유재석이라는 인물에 다소 실망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혹 가해자였던 해당 정당이 과거 악습을 반복할까 두려워, 방송국 혹은 프로그램이 보복당하지 않기 위해 당선인 측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런데, 꼭 이번 당선인 출연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유퀴즈는 이미 본연의 색깔을 잃어버린 프로그램이다. 꼭 프로그램이 특정 포맷으로 고정될 필요는 없지만, 필자가 이해하는 유퀴즈는 유재석과 조세호가 랜덤으로 길거리를 나서서 (그 날의 특정 테마에 관해) 랜덤으로 만나는 시민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의 애환을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비슷한 시민과의 랜덤 포맷을 표방했던 이경규, 강호동의 한끼줍쇼도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대략의 방문 지역과 공략 포인트도 연출자와 작가가 사전에 알아보고 의도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 뻔히 보이기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와 달리 유퀴즈는 으리으리한 집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MC와 마주칠 가능성이 동일한 확률로 보장되어 있는 길거리라는 특성 상 서민의 목소리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포맷이 아니었나 싶다. 이는 이미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일부 시도했던 형식으로, 시청자의 눈 높이에 맞추어 랜덤 확률의 예측 불가능성으로 오는 신선함을 기대할 수 있는 포맷이었다.

 

그러다 2020년 초 갑자기 코로나가 터졌다. 더 이상 길거리에서 랜덤으로 사람을 대면하여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방역지침 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상황에서도 프로그램은 계속 이어가야 했던 그 사정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네 서민과 맞닿아 있는 사람들이 나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유퀴즈는 간단히 정의하기에는 '성공한 셀럽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렸다. 그것이 감동적이든, 역경을 이겨내고 좋은 일을 하여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든, 어쨌거나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친숙함, 일반성, 거기에 누구를 만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이 일제히 사라지고, 한 회 차에 2~3명의 성공한 사람, 혹은 화제가 될 만한 사람을 불러서 감동이나 교훈을 짜내는 보통의 토크쇼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윤 당선인이 유퀴즈에 나온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도 않다. 딱히 특별한 감정도 없다.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미 실패한 프로그램일 따름이다. 최근 해당 방송국의 연출자들이 타 방송사로 이적하는 소식이 연이어 들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 인해 전례 없는 세계 전염 상황(pandemic) 맞이했다. 다행히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 되었다. 글에서는 바이러스로 인해 갑자기 수요가 급증하여 구하기 어렵거나, 가격이 훨씬 비싸진 물품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거의 대부분의 항목이 판데믹 상황에서 세계 최고 대응 수준인 한국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먼저 염두에 두길 바란다.

 

 

1. 마스크(Mask)

한국을 제외한 미국, 프랑스, 영국, 일본 주요 국가에서는 일반 시민들은 커녕, 최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마저 마스크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다. 일반 일회용 마스크의 경우 미국이나 한국이나 천원 정도였는데, 이제는 10배를 주고도 물량이 없어 구하지도 못하는 나라가 많다. 특히 차단 효과가 높은 N95 마스크의 경우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구하기가 하늘의 따기 만큼 어렵다. 얼마 없는 분량조차 의료진들에게 우선 지급되는지라, 만일 천행으로 구했다고 해도, 의료진도 부족하여 쓰는 마스크를 사재기한 사람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다. , 있어도 선뜻 쓰지 못한다. 

 

2. 소독제(Hand Sanitizer)

소독제 역시 구하기 정말 힘들어졌다. 대부분 안티 박테리아(Anti-Bacteria)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안티 바이러스 효과가 있는지는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시 여러 군데에 비치해놓고 수시로 바를 밖에 없다.

 

3. 비누(Hand Soap)

역시 해외의 매대에는 비누 칸도 사람들이 모두 가서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외출하고 들어온 , 혹은 외부에서 배달된 물품을 만질 수시로 손을 씻는게 중요하다.

 

4. 살균제(Disinfectant)

이것 역시 구하기 힘들다. 물에 희석하여 분무기에 담아 수시로 집안과 차안 구석구석을 청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5. 살균세정 티슈(Disinfectant Wipes)

균이나 바이러스의 온상이라고 있는 스마트폰을 비롯하여, 지갑, 열쇠, 신용카드 외부에 자주 노출되는 물품 역시 수시로 닦아주어야 필요가 있어 수요가 크게 늘었다.

 

6. 노트북(Laptop)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재택근무 전환자가 많아, 평소 자택에 업무 환경(working station) 구축해놓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저마다 노트북을 사고 있다. 대학과 초중고에서도 원격 수업을 하면서 인원 수대로 맞추어놓기까지 해야 한다. 이미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평을 받아 소비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시로 할인 행사를 하던 노트북이 거의 할인을 하지 않고 있다. 값이라도 웬만하면 필요에 의해 구입을 하기 때문이다. 세일도 하고 성능도 좋은 제품은 어김 없이 재고가 없다고 나온다.

 

7. 모니터(Monitor)

역시 재택근무의 일환으로 듀얼 모니터를 사용하려는 이들로 인해 모니터가 세일을 하지 않는다. 불과 1~2 전부터 입소문을 타던 주로 중국제품 일색인 휴대용 모니터(portable monitor) 역시 재고가 없는 제품이 눈에 띈다.

 

8. 태블릿(Tablet)

원격 수업을 할 때 적어도 아이들 한 명 당 노트북, 데스크탑, 태블릿, 스마트폰 네 개 중 한 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노트북과 같은 이유로 수요가 많아졌다. 다만 태블릿의 경우, 이미 수요가 한계에 거의 도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급이나 재고도 충분하여 구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르지는 않는 듯 하다.

 

9. 냉동고(Chest Freezer)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의 경우 이동 금지 명령으로 나라 전체가 셧다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식료품 구입 예외적인 상황만 허용이 되는데, 따라서 예전처럼 장을 자주 보러 가지 못하니, 냉동고가 중요해진다. 미국의 경우 전자제품을 파는 거의 모든 종류의 매장에 냉동고는 재고가 없으며 주문도 불가능하다. 있어도 이전 가격의 2배 이상 상승했거나 주문한 뒤 한 달 여를 대기해야 한다.

 

10. 빵(Bread)

주식이 밥인 한국과는 달리 서양문화는 빵이 주식이다. 매대에 가면 식빵이 다 팔려 있는 경우가 많다.

 

11. 밀가루(Flour) 및 케익 믹스(Cake Mix)

가장 구하기 힘든 물품 중 하나이다. 서양의 경우 가정마다 오븐이 하나씩 있는데, 집에 있는 시간까지 많아지니, 각종 쿠키, 파이, 케이크, 머핀 등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12. 파스타 면(Pasta)

건조 상태라 보관이 용이한 파스타 면 역시 구하기 힘들다.

 

13. 캔 음식(Canned Food)

유통기한이 길어 장기 보관이 가능한 캔 음식 역시 구하기 힘들다.

 

14. 곡물

역시 건조 식품으로 장기 보관이 가능하기에 구하기 힘들거나 구입 수량에 제한이 걸려 있다.

 

 

 

 

 

앞으로 계속 update됩니다.

 

어서 빨리 전 세계가 바이러스로 인한 아픔에서 회복되기를.

 

 

 

 

 

 

 

태생적으로 정당의 네이밍 자체가 잘못되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정의로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굳이 정당의 이름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정치 영역에 윤리를 개입시키는 시도는 위험하다. 더러운 것을 닦아내려면, 자신도 그 무대에 뛰어들어 직접 손에 더러운 것을 묻힐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당의 이름 자체가 '정의당'이 되는 순간,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져 스스로를 옭아매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의'는 누가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소수의 정의당 지도부가 규정하는 것이 사회의 정의인가? 자칫하면 그 어떤 정당보다 비민주적이고 급진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누구보다 노동자와 약자의 편에 있었으면서도, 인기 있는 대중정치인으로서 언론이나 공개된 장소에서는 자신을 지지하는 노동자 집단을 대변하는데 국한되기보다 늘 일반 국민의 기준에 맞추어 상식과 정의로움을 이야기했던 고 노회찬 의원의 빈 자리가 무척이나 크게 느껴진다.

 

국민의 대표 신분으로는 한 번도 생명을 던진 적이 없던 정치 신인 이정미 전 대표가 자신들 의석 확보에 더 유리한 선거제도로의 개편을 위해 시도했던 단식 농성은 어떠한 공감도 일으키지 못했다. 삼권 분립을 무시하고 개입하여 제왕적이고 부패한 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이명박, 박근혜를 비판해서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오히려 국회 원 내에서밖에 해결할 수 없는 사안까지 때때로 행정부 수장인 문 대통령에게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에서 모순과 어리석음을 느낀다. 한국식 대통령제와는 정합성에 의문 부호가 달려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하면서, 정작 선거 제도를 넘어 국가 시스템 전체를 민의에 따라 개혁하고자 했던 문대통령의 헌법 개정안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비례대표 의석 및 국회의원 의석의 확대를 주장하면서, 늘 정치사에 폐쇄형 비리로 얼룩져온 비례대표 명부를 작성할 때 당내 민주주의를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또는 국민의 뜻을 명부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정의당이 가진 모순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구태 정치'라며 자신이 뛰어들 정치라는 장 전체에 침을 뱉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리에 가장 고전적이고 안전한 방법으로 안착하고자 했던 안철수나, 자신들의 과오와 불법에 대한 반성 없이 의원 정수 감축만 주장했던 자유한국당이 만들어놓은 '정치 혐오'의 관념을 타파하고자 한다는 이들이, 오히려 국회의원 세비 감축 및 보좌관 수 감축을 제안함으로서 정치 행위 자체가 여전히 '혐오할 만한 것'임을 자인하고 있다. 국민이 바라는 이상적인 국회의원은, '월급을 적게 받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월급을 많이 받더라도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국회의원'인 것을. 그들은 크게 오해하고 있다.

 

민주당이 보수당, 정의당이 진보당이 되는 시대는 요원하기만 하다.

카즈 히로(Kazu Hiro), 또는 카즈히로 츠지(Kazuhiro Tsuji)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2017년 (Darkest Hour)에 이어 Bombshell이라는 작품으로 또 다시 아카데미 분장상, 정확히는 Academy Award for Best Makeup and Hairstyling (최우수 화장 및 헤어스타일 연출상)을 수상했다. 세계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할리우드에서도 아카데미 분장상의 영예를 두 번이나 얻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이니 그 실력은 업계 최고임이 분명하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맨인블랙 시리즈부터 혹성탈출, 링II,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헬보이, 지아이 죠 등이 있다. 그는 유수한 영화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참여한 뛰어난 실력자이다.

 

공동 수상이지만, 수상 소감이나 백스테이지에서의 기자들의 대응 태도, 그리고 거기서 나타난 존재감을 볼 때, 누가 봐도 그 중 카즈 히로가 메이크업 팀의 리더였음이 분명했다. 심지어 2017년, 2019년 각각 3명씩 공동 수상인데, 카즈 히로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공동 수상자는 해마다 다르다. 조금 과장해보면, 카즈 히로와 그의 팀이라고 할 정도이다. 

 

그런 그가 수상 소감을 말할 때나 이후 백스테이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때, 동문서답이라 할 정도로,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마치 반복 녹음 테이프를 틀어놓은 것 마냥 몇 번이고 비슷한 말을 반복하여 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훌륭한 사람들과 같이 협업하는 것이 즐거웠다.'라는 말이었다. (비록 자신이 리더였을지라도) 훌륭한 사람들, 좋은 동료들과 함께 동등한 위치에서 힘을 모아 작업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과정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두 번째 오스카 분장상 수상 후 백스테이지 기자회견장에서 토시오 오카타라는 아사히 신문의 일본 기자가 카즈 히로에게 질문을 했다. 그의 두 가지 질문 중 후자는 다음과 같다.

 

일본 기자: "일본이 전승해온, 당신의 일본에서의 (분장 혹은 영화산업 종사) 경험이 당신의 두 번의 (오스카) 수상에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본 기자가 어떤 의도로 질문을 던졌는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기자는, 훌륭한 장인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일본의 기술과 산업이 최고다! 라는 일본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카즈 히로로부터 일본에서의 소중한 경험이 오늘날 나를 만들어냈다는 식의 겸양과 일본에 대한 찬사에 대한 기대로 이 질문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카즈 히로의 덤덤하고도 공손한 말투에서 나온 답변은 일본 기자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카즈 히로: "You know what, I am sorry to say, but I left Japan and became an American because I got tired of this culture. Too submissive and you know too hard to make a dream come true. Sorry."

(사실은요.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나는 일본을 떠나 미국인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 문화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지요. 지나치게 복종적인 문화 말입니다. 그리고 꿈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미안합니다.)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왜 카즈 히로가 각종 수상 소감과 기자 회견마다 반복해서 함께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즐거웠다는 것을 강조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업계의 일본식 조직 문화를 벗어나, 좋은 사람들과 수평적이고 동등한 관계에서 팀을 이루어 협력하여 일을 완수해 내는 것이 훨씬 보람차고 본인에게도 어울리는 것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은 카즈의 이 발언으로 난리가 난 모양이다. 한국은 이제야 아카데미 첫 수상자가 나와 온 언론이 들썩이는 마당에, 일본 출신으로 이미 2년 전에 아카데미에서 수상하고 또 수상자가 된 카즈 히로에게서 일본에 대한 찬사를 듣고 싶은 기대가 컸을텐데, 그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와버렸으니. 그것도 아주 젠틀한 톤으로. 

 

그렇다면 한국은 일본 사정이라고 마냥 고소하게 여길 일인가? 안타깝게도 '그게 아니올시다.' 이다. 카즈의 간결한 발언은 비단 일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아시아 문화예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압적이고,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문화 예술계의 사정. 한국이라고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었다. 과도한 업무, 갑질, 권위적인 조직문화, 폭언, 가족을 향한 협박으로 인해 tvN의 이한빛 PD가 자살한 사건, 갑의 위치에서 열정페이를 넘어 노페이(무보수)로 꿈많은 젊은이들을 착취한 패션업계, 1년 동안 제작사에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영화제작사 근로자의 자살... 

 

공교롭게도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한 여러 동양인 중 한국인인 봉준호 감독, 일본인인 카즈 히로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두 위 강압적이고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옥자, 설국열차를 통해 배우 노동조합이 자리잡은 할리우드의 선진문화와 일을 해본 경험을 기반으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주 52시간 근무를 준수하며 기생충을 제작한 봉준호 감독, 좋은 사람들과 만나 함께 협력하여 일을 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고 계속하여 강조하는 카즈 히로 아티스트. 이 둘이 문화예술계의 정점에 선 것이 단순히 우연일까. 투자자의 압박, 창작의 고통, 기한이 주는 스트레스, 모든 관련자들을 조율해야 하는 어려움. 이 모든 것을 '권위주의'와 '강압'이 아닌 '공정'과 '수평적 관계'로 풀어낸 봉준호 감독과 카즈 히로 아티스트가 최고의 성과를 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과를 낸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정답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아시아의 모든 문화예술인들이 곱씹어볼 문제이다. 

 

 

 

자신이 고민하고 노력한 작품에 대해 주는 최고의 영예, 이를 짊어진 사람들이 오히려 같이 노미네이트된(후보 자리에 오른) 사람들에게 공로와 찬사를 돌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최근 목도할 수 있었다. 한 명은 한국인, 한 명은 미국인으로부터다. 

 

먼저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4관왕의 영예를 받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 수상 시에 했던 발언을 살펴보자. 같이 후보군에 오른 감독과 작품은 다음과 같다.

 

봉준호, 기생충(Parasite)

마틴 스콜세지, The Irishman

쿠엔틴 타란티노,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토드 필립스, Joker

샘 멘데스, 1917

 

유튜브 링크: Bong Joon Ho Accepts the Oscar for Directing 봉준호 오스카 감독상 수상

 

Thank you. 좀 전에 그 국제영화상 수상하고 인제 '아 오늘 할 일은 끝났구나' 하고 릴렉스하고 있었는데.

 

아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누구였냐면, 책에서 읽은 거였지만.

 

That quote i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 (그 말은 바로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말입니다.)

 

(이때 그 자리의 모든 영화인들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기립 박수로 경의를 표했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도 일어나 손을 흔들고 화답했다.)

 

제가 학교에서 마티(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애칭)의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던 그런 사람인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도 너무 영광인데, 상을 받을 줄 전혀 몰랐었구요. 

 

저의 영화를 아직 미국의 관객들이나 사람들이 모를 때 항상 제 영화를 리스트에 뽑고 좋아하고 했었던 쿠엔틴 형님이 계신데 정말 사랑합니다. Quentin I love you. 

 

그리고 같이 후보에 오른 우리 토드나 샘이나 정말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멋진 감독들인데 이 트로피를 오스카측이 허락한다면 텍사스 전기톱으로 다섯 개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Thank you. I will drink until next morning. (감사합니다. 날 새서 술 마실 거에요.)

 

 

이처럼 봉 감독은 할리우드의 역사와 함께 한 노년의 위대한 감독을 향해 찬사를 보냈으며, 자신이 미국에서는 무명이다시피 할 때에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오랜 친구 쿠엔틴 감독에게도 감사를 표했으며, 후보에 오른 나머지 두 감독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영광을 후보에 오른 모든 이와 함께 나누고 있다는 표현에서도, 유명한 할리우드의 호러물인 텍사스 전기톱(Texas Chainsaw: 원제 "The Texas Chainsaw Massacre")을 인용했다. 이는 외국감독인 자신을 편견 없이 인정해준 일종의 할리우드에 대한 경의 표시이기도 했다. 외국인인 자신이 상을 받았지만, 할리우드의 위대함은 여전히 존경할만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신호를 보내 외국인에게 최고의 자리를 뺏긴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위기감 또는 공허함을 위로한 것으로, 대단히 지혜로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텍사스 전기톱을 비유로 들며 간간이 위트와 유머를 섞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쩌면 봉 감독은 다음에 언급할 이 사람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2020년 2월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열흘 전, 1월 말에는 미국 배우조합상 (SAG Awards: Screen Actors Guild Awards)이 열렸다. 이때 이변 없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소감을 살펴보자. (그는 같은 해 그 전 골든 글로브, 그 이후 아카데미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자리에 베스트 앙상블상 (배우 합연 상이라고 해야 할까)을 받은 기생충 팀과 봉준호 감독도 참석했고, 호아킨 피닉스의 이 소감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같이 후보군에 오른 배우와 작품은 다음과 같다.

 

호아킨 피닉스, Joker

크리스챤 베일, Ford v Ferrari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아담 드라이버, Marriage Story

태런 에저튼, Rocket Man

 

 

 

Hi. Umm, I was here many years ago, and I couldn't fully appreciate it at the time. I now realize how furtunate I am to be part of this community have such reverence for actors and what we do. I do feel really honored to be here.

안녕하세요. 음.. 나는 이 자리에(SAG Awards) 훨씬 오래 전에 왔었는데, 그때는 제대로 감사하지 못했어요. 이제 와 나는 내가 이토록 배우라는 존재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존중을 담은 이 공동체의 일원인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를 깨달았습니다.

 

I'd like to just talk about a little bit about my fellow nominees if that's ok. 

나는 괜찮다면 후보에 오른 내 동료들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고 싶어요.

 

When I started acting again, and going to auditions, I'd always get to like the final callback, and I think many people know what that's like.

내가 연기를 다시 시작했을 때, 그리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을 때, 나는 늘 최종 면접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아마 많은 분들이 그 심정이 어떤 건지 알 거에요.

 

And there would always be, like, two other guys that I was up against. And we'd always lose to this one kid. No actor would ever say his name because it was, like, too much, but every casting director would whisper, 'It's Leonardo.' Ah, who is this Leonardo?

그러면 항상 나와 경쟁하던 두 명의 다른 남자 배우가 최종 후보군에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늘 이 녀석한테 밀려 떨어졌지요. 다른 어떤 배우도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어요. 왜나하면 좀 지나쳤거든요. 그렇지만 모든 캐스팅 담당자가 속삭이곤 했어요. "레오나르도여야 해!" 아.. 이 레오나르도는 누구란 말입니까?

 

Leo, you have been inspiration for over 25 years to me and so many people. Thank you very very very much.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당신은 25년도 넘게 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어요. 정말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Christian, I don't know where you are. You commit to your roles in ways that I can only dream of. You never turns in a bad performance. It's infuriating. I wish you would one time just suck once. It would be great, ok? 

크리스챤 (베일), 어디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네. 당신은 내가 오직 꿈꿀 수 밖에 없는 방법으로 당신의 역할에 전념하지요. 당신은 절대 낮은 수준의 연기를 하지를 않아요. 정말 화가 나는 일입니다. 당신이 제발 딱 한 번만 (연기를) 망치는 걸 보고 싶어요. 좋을 것 같지 않나요?

 

Adam, I've been watching you last few years, and you've just turning in these beautiful, nuanced, incredible, profound performances and I'm just so moved by you and you were just devastating in this film and you should be here.

아담 (드라이버), 당신(의 연기를)을 요 몇 년 간 지켜보았는데 정말 아름답고 미묘하고 엄청나고 심오한 연기를 보여주었어요. 나는 당신의 연기에 정말 감동하였고, 당신은 이 영화에서 압도적이었어요. 당신이 (내가 선) 이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

 

Taron, I am so happy for you whereever you are. Hey, hey man. You're so beautiful in this movie, and I'm so happy for you, and I can't wait to see what else you do. 

태런 (에저튼), 나는 (당신이 어디에 앉아있든) 당신 때문에 참 기뻐요. 당신은 이 영화에서 정말 아름답고, 나는 정말 당신으로 인해 행복해요. 그리고 당신이 또 다른 무엇을 하게 될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And really I am standing here on the shoulders of my favorite actor, Heath Ledger. Thank you, and good night. 

그리고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 히스 레저의 어깨 위에 서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히스 레저는 크리스챤 놀란 감독의 배트맨 트릴로지 중 Dark Knight에서 조커로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다. 광기에 사로잡힌 조커라는 배역에 너무 몰입해서인지 그는 이내 자살하고 말았다. 그는 사후에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조커라는 난해하고 심오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고뇌한 호아킨 피닉스 자신이, '거인의 어깨에 서서'라는 관용구를 빗대어 같은 인물인 조커를 먼저 훌륭하게 연기한 동료 배우 히스 레저에게 헌사를 보낸 것이다. 

 

각종 한국 연말 시상식에서 눈물 쏟느라 발언도 똑바로 못하고, 술자리나 집에서 혼자 배출할 감정의 무게를 카메라 앞에서 응석받이하듯 내쏟고, 어버버하는 모습, 겸손이 미덕인 양 소감의 서두를 공허한 겸양과 자기 비하로 날려버리는 천박하고 한심한 작태들만 보다가, 이 둘이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고 한편으로 동료들에게 헌사하는 훌륭한 소감을 들으니 귀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상식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최우수 작품상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수상하였다. 시상식의 피날레로서 최우수 작품상이 호명되자 한국에서 참석한 모든 영화 관계자 (배우, 제작자, 스태프 등)가 무대에 올라 자축했다. 그리고 이어서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발언했고, 이어서 배급, 유통사인 CJ의 이미경 부회장이 발언했다. 

 

이를 두고 이미경 부회장에 대한 비판이 꽤 나오는 모양이다. 사실, 인터넷 댓글이 국민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 즉 대표성이 전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필자로서는 그 비판조차도 의심스럽지만, 그 비판이란 이렇게 몇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째, 대개 제작자와 감독에게 소감 발언 기회가 주어지는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에 배급 유통사 대표가 (뜬금 없이) 왜 발언하였는가? 둘째, 배급, 유통사 대표가 제작자에 이어 소감 발언 기회가 주어지는 것 자체가 거대 자본에 대중 문화 예술계가 잠식당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셋째, 꼭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나? 넷째, CJ와 그 회장 (이미경 부회장의 형제)은 왜 언급하였는가? 

 

이미경 회장에 대해서 필자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우리나라 대중 문화, 예술계를 지난 수십년 동안 지배해온 거대 기업의 영향력 있는 큰 손이라는 점, 최순실, 차은택과 더불어 부패 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계를 강탈하려고 했던 꼭두각시 박근혜에 찍혀 당시 직책에서도 물러나고 곤욕을 치뤘다는 점, 이 둘 뿐이다. 그녀와 필자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이미경 부회장을 향한 위 비판점에 대해 변론을 펼치고자 한다.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에서 관례적으로 제작자가 소감 발언을 해왔다고 해서, 배급, 유통사가 발언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제작부터, 기획, 연출, 촬영과 연기, 유통, 배급, 홍보에 이르기까지 한 덩어리의 거대한 집합체인데, 그 중 한 명이 발언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더군다나 이미 제작자가 소감 발언을 마친 마당에, 이미경 부회장이 아니라, 송강호 배우, 혹 박소담 배우가 발언 기회를 잡았다 한들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이미경 부회장 대신에 조여정 배우가 소감을 말했어도 이토록 비판이 쏟아졌을 것인가? 곽신애 대표는 수상 후 기자회견 장에서, '최우수 작품상은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작품에 참여한, 엔딩 credit에 올라간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발언했다. 즉 최우수 작품상 소감은 credit에 오른 누가 말했어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는 것이다. 이선균 배우나 한진원 작가가 소감을 말했다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어야 했다. 심지어 이미경 회장은 배급, 유통뿐만이 아니라 제작, 투자까지 맡은 사람이다. 이미경 부회장의 소감은 관례에 전혀 어긋나지 않은 셈이다.

 

기생충이라는 작품과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를 비롯한 각종 영화제의 정점에 서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기생충이 이토록 전세계, 특히 북미에서 찬사를 받기까지 배급, 유통사인 CJ 및 Neon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기생충 이전에도, 봉준호 감독의 전 작품들(괴물, 살인의 추억)을 비롯하여 수많은 수작들이 많이 있었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 이창동 감독의 밀양 등)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말한) 1인치의 자막이라는 장벽을 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기생충이 이 정도 최우수 작품상을 받을 정도라면, 위 네 개의 작품은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에 최소한 후보에는 올랐어야 형평에 맞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기생충은 처음 제작, 투자 단계부터 영어로 번역하여 북미에 개봉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한 자금력이 뒷받침해주고 있었으며, 봉감독이 옥자, 설국열차 등으로 이미 북미에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상태였기에 그나마 북미의 주목을 받고, 꽤 많은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CJ 이미경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아니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한국 감독 중에서는 그래도 제일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국내에서 탄탄한 재정적 지원을 받는 봉준호 감독조차도 설국열차 북미 개봉 당시 Harvey Weinstein이라는 할리우드의 거물이자 괴물로부터 20분 가량을 삭제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봉 감독은 이를 거절하였기에 결국 설국열차는 제한적 상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북미 개봉관도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 그 더러운 성폭행범 Harvey Weinstein의 성추문 사례가 만일 미투운동으로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할리우드의 거물로서 기생충에게도 가위질을 하려 했을 것이고, 기생충은 또 다시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과정 속에 투자, 배급, 홍보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CJ 이미경 부회장의 노고가 작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칭송해마지 않는 할리우드는, 작품성을 겨루는 곳이라기보다는, 더 정확한 표현은 '자본력'을 겨루는 각축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 자본이 닿아있지 않는 작품은 수상 후보는 커녕 주류인 할리우드 내에서 최소한의 상영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최우수 작품상 소감 연설 때 상황은 이러했다. 먼저 곽신애 대표가 이런 결정을 내려준 모든 아카데미 회원분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의 끝을 맺었다. 오스카 전체 쇼의 오버 타임으로 기획자가 맘이 급했던 탓인지, 기생충 영화 관련 한국 사람들이 모두 무대에 나와 있는 상황에서 곽신애 대표의 짧은 소감이 끝나자 관계자는 갑자기 무대의 조명을 다 꺼버렸다. 한국 영화의 최우수작품상 수상에 기뻐하며 시청하던 한국 사람으로서는 무척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관객들 (카메라엔 톰 행크스의 모습이 크게 잡혔다.) 다수가 불을 다시 켜라고 (소감을 더 듣고 싶다는 뜻) 함께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고, 다시 조명이 들어와 발언 기회가 한 번 더 생긴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까지 수백, 수천 번의 인터뷰에 응하고 소감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그는 이를 '캠페인'이라고 칭할 정도로 정말 길고도 집요한 과정임을 인정했다. 원래 기생충이 뜨기 전부터 예정해놓은 빡빡한 북미 홍보 일정이 있었으며, 수십 개의 전 세계 영화제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며 소감 발언을 해야만 했고, 수십 개의 상영회에 참석하여 같이 영화를 보고 관객들과의 만남 시간을 가져야 했다. 수 많은 미디어와 인터뷰를 했고, 미국, 혹은 서구권의 특유한 문화인 스탠딩 파티에서 각국의 영화계 거물들과 만나 친목도 다져야 했다. 당장 아카데미 당일만 하더라도 레드카펫을 걸어가는 동안 세 명 이상의 생중계 언론인들에게 붙잡혀 인터뷰를 했으며,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감독상으로 이미 세 번의 소감 기회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한 상태였다. 심지어 수상 후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영화를 실제로 촬영한 기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각종 시상식에 참여하여 다양한 수상소감을 말하느라 이제는 수상소감 소재가 고갈된 나머지, 밤새 술마시겠다라는 표현까지 했다.' 라는 발언을 했다. 이미 이전 다른 시상식에서는 "비건 버거 마저 먹겠다." 라는 소감발언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품상의 발언 기회를 봉준호 감독이 수십 년 간 한국 문화예술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은 투자배급사 대표에게 양보한 것이 무에 그리도 비판받을 만한 일인가? 

 

그리고 이미경 부회장이 자회사인 CJ를 언급하며 홍보했다는 것은 가짜 뉴스이다. 그녀는 CJ를 입에 답지 않았다. 다만 이재현 회장(Jay)을 언급하며 감사를 표했을 뿐. 

 

최광희라는 평론가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에서 제작자나 감독이 아닌 투자배급사 대표가 소감을 발언한 적이 없고, 심지어 기생충 credit에도 없다고 하는데 너무나 엉터리라 이런 사람이 평론가로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단언컨대, 나는 이 최광희라는 평론가보다는 영화 평론 글을 더 잘 쓸 자신이 있다. 우선, 아카데미 90여년의 역사 상, 최우수 작품상 소감에 제작자와 감독이 아닌 투자배급사 대표가 소감을 발언한 전례가 단 한 번도 없는지는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때로는 제작사와 투자배급사가 동일하거나 경계가 모호한 사례가 종종 있으므로 이 발언은 사실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기생충의 credit에는 '제작투자 이미경'이라고 당당히 단독으로 이미경 부회장의 이름이 나온다.

 

제/작/투/자/이/미/경!!!!!

 

이 정도면 최광희라는 평론가는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직업도 그닥 잘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설령 투자배급사 대표는 소감을 발언한 전례가 없다고 치자. 아카데미는 백인 일색, 미국 중심주의라는 틀을 과감히 깨고 한국의 영화와 감독에게도 최고의 영예를 선사하는 파격을 보였는데, 고작 우리는 그 정도의 파격도 보이지 못하는가? 할리우드 중심의 영화판에 태극기를 꽂고 온 이들에게 소감 연설의 작은 선례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굴욕적인 사대주의가 아닌가?

 

봉 감독의 이 천재적이고도 위대한 성과는, 역설적이게도 봉 감독만의 공로가 아니다. 2019년, 한국 영화는 백주년을 맞이했다. 백여 년 동안,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던 시기와 독재로 신음했던 그 긴 시간동안 한국 영화는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지키고자 투쟁했고, 수많은 무명의 영화인들의 노력에 의해 명맥을 이어왔다. 바로 그 누적된 집약체로서 기생충의 최우수 작품상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인고의 시간동안 한국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이미경 부회장, 그녀가 그 자리에 있는 누구 못지 않게 감격스러웠으리라. 

 

이미경 부회장을 높이 평가해주고 싶은 것은 그녀의 훌륭한 소감 연설 때문이다. 그녀는 원어민과 같은 유창한 액센트로 직접 영어로 소감을 이야기했다. (구어체라 약간의 어색함은 넘어가자.) 아래 영상과 전문을 살펴보자. 한글로 필자가 번역해 보았다.

 

 

유튜브 영상: Parasite Accespts the Oscar for Best Picture (최우수 작품상: 기생충)

 

Hi, everybody. 

모두 안녕하세요!

 

I really like to thank Director Bong. Thank you. Thank you for being you. 

나는 봉준호 감독에게 정말 감사해요. 감사합니다. 당신이 당신다워서 감사해요. 

 

And I like everything about him, his smile, his crazy hair, the way he talks, the way he walks, and especially the way he directs.

나는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그의 미소도, 그의 난잡한 머리카락도, 그가 말하는 방식도, 그의 걸음걸이도, 그리고 특히 그의 연출 방식을요.

 

And what I really like about him is his sense of humor, and the fact that he can be really making fun of himself and he never takes himself seriously. Thank you. Thank you very much. 

그리고 내가 그에 대해 정말 좋아하는 것은 그의 유머감각이에요. 그리고 그가 그 자신에 대해 늘 익살스럽고, 그가 절대 스스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And I'd like to thank everybody who's been supporting Parasite, who's been working with Parasite, and who's been loving Parasite.

그리고 나는 기생충을 지지해준 모든 분들, 기생충과 함께 일한 모든 분들, 기생충을 사랑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And I'd like to thank my brother who's been always supporting building our dreams even when it looked impossible dream. Thank you, Jay. I want to thank my brother, Jay.

그리고 나는 때로는 불가능한 꿈처럼 보일 때조차도 우리의 꿈을 이뤄나가기 위해 늘 지원해준 내 동생(CJ 이재현 회장)에게도 감사드리고 싶어요. 이 회장 고마워요. 내 동생 이 회장 고마워요.

 

And especially I really really really want to thank our Korean film audience, our moviegoers, who's been supporting all our movies, and never hesitated to give us straight forward opinion on what they feel like their movies. 

그리고 특별히 나는 정말 정말 정말 한국 영화 관객들, 영화 팬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들은 언제나 우리의 영화들을 지지해주었고, 그들이 우리의 영화들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늘 직설적인 의견을 전달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And that made us really never be able to be complacent and keep pushing the directors, creators, keep pushing the envelopes.

바로 그 점이 우리로 하여금 절대로 기고만장하지 않고, 감독과, 창작자들로 하여금 한계를 시험하도록 계속 동기 부여를 해줍니다.

 

And without you, our Korean film audience, we are not here. Thank you very much. 

그리고 한국 영화 관객분들, 바로 여러분들이 아니면 우리는 여기에 없었을 거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영화 수상 소감 중에 이토록 한국 영화 팬들에게 직접적이고 진솔한 감사의 표현을 한 공인이 또 누가 있었던가? 정말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이 소감의 Bold 처리한 말미의 연설은 한국 예술문화계 역사에 기록될 최고의 명연설 중 하나라고 나는 확신한다. 한국말로 이야기하지 않고 영어로 이야기해서 일부는 뿔이 난 건가? 영화와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세계의 중심이자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미국 영화인들 앞에서, 한국 영화가 최우수 작품상을 탄 것도 모자라, 소감에서 다름 아닌 '한국 관객'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 것. 이것이야말로 일대 사건이 아닌가? 

 

각종 한국 연말 시상식에서 눈물 쏟느라 발언도 똑바로 못하고, 술자리나 집에서 혼자 배출할 감정의 무게를 카메라 앞에서 응석받이하듯 내쏟고, 어버버하는 모습, 겸손이 미덕인 양 소감의 서두를 공허한 겸양과 자기 비하로 날려버리는 천박하고 한심한 작태들만 보다가, 지난 며칠 각종 해외 시상식을 통해 늘 시원시원하고 간결하지만 핵심이 담긴 말을 전달하는 봉준호 감독의 소감, 인간애와 배우의 소명에 대해 자각하는 송강호 배우의 소감, 그리고 미국 한복판에서 한국 영화팬들을 향한 깊은 감사를 전하는 이미경 부회장의 소감을 들으니 속이 후련하다. 정말 후련하다.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이 아시아 최초로 작품에 주는 최고의 영예(최우수작품상)와 감독 개인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감독상)을 거머쥠으로서 온 대한민국, 아니 온 세계가 이 훌륭한 감독과 작품을 향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카데미는 지역적인 상일 뿐이라는 ("Academy is local") 봉준호 감독의 이전 발언에 공감하며, 기생충 못지 않게 훌륭한 이전 한국 영화들(곡성, 변호인, 밀양, 올드보이 등)이 단지 미국 중심, 할리우드 중심의 영화 산업의 특성 상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기생충 및 봉준호 감독의 4관왕은 당연한 결과이며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아카데미, 오스카, 봉준호, 기생충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에 사람들이 열광할 때, 그 찬사에 가리워진 몇 가지를 조용히 짚어보고자 한다. 기생충과 봉감독이 이룬 성과 못지 않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들을.

 

 

첫째, 이와 같은 영화의 천재이자 마스터(Master)를 탄압한 정권이 있었다. 

 

UPI뉴스: 봉준호 감독은 왜 '블랙리스트'에 올랐을까

 

국민일보: "기생충 안 봐"... 한국당이 봉준호를 외면하는 이유

 

'변호인'과 송강호, 그리고 블랙리스트…"제작사 불이익, 뚝 끊긴 섭외"

 

희대의 사기꾼이자 만고의 역적, 국민을 착취하고 더럽히면서 감히 국민의 대표자로 있었던 이명박과 박근혜는 집권 당시 문화계를 '좌파 권력이 장악한 집단'으로 정의하고 그 좌파 세력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봉준호는 그 중에서도 '강성 성향'으로 분류된 69명 중 한 명이었다. 영화 '괴물'은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하는 영화', '살인의 추억'은 '공무원, 경찰을 부패, 무능한 비리 집단으로 묘사해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입하는 영화', '설국열차'는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 저항 운동을 부추기는 영화'로 평가했다.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괴물을 만들어 국민을 욕보이고 역사의 대죄를 저지른 공범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여전히 봉감독에 대한 인식이 그 수준에 머물러 있어, 봉준호 감독이 이번에 기생충으로 수십, 수백 개의 전 세계 영화상을 휩쓰는 동안 축하 논평조차 낸 적이 없다. 기생충은 자본주의의 폐해인 빈부 격차, 나아가 계급 간의 갈등 (하층민과 최하층민 간)을 소재로 삼고 있기에 그들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영화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더구나 가장 창의성이 자율적으로 발휘되어야 할 문화계에, 좌파로 낙인찍고 지원을 끊는 한편 의도적으로 우파 문화 세력을 만들어 육성하고자 했으니, 방법이 유치하고 역겨운 것은 둘째치고,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는가를 믿었다는 그들의 어리석음이 더 놀랍다. 

 

봉감독 뿐만이 아니라 기생충의 아버지 기택 역을 맡은 송강호, 기생충의 투자배급 총괄 대표인 CJ의 이미경 부사장 모두 이명박 박근혜 무뢰배들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공통점이 있다.

 

다행히도 이들은 그 무뢰배들이 무너뜨리고자 한다고 무너질 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봉 감독은 이미 CJ 등을 통해 자유로운 영화 제작에 필요한 탄탄한 재정과 인력을 확보한 상황이었다. 하마터면 이처럼 능력 있는 예술인들을 지원은 못해줄 망정 정부가 앞길을 가로막을 뻔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와 똑같은 사고 체계를 가진 역적 도당들이 자유한국당, 미래한국당, 새보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총선에 또 명함을 들이밀고 있다.

 

 

둘째, 봉준호 감독은 공정한 근로조건과 배우, 스태프들 처우 개선을 통해서 오히려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2016년, 인기를 끌던 혼술남녀를 담당하던 tvN의 신입 PD이자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과도한 업무, 갑질, 권위적인 조직문화, 폭언, 가족을 향한 협박 등 이 사회의 비뚤어진 조직문화와 문화예술계의 민낯이 낱낱이 공개된 사건이었다. 안타깝게도 꽃다운 20대에 유명을 달리한 이PD의 죽음 이후에도 방송, 영화계에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 일부 톱스타는 제작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엄청난 출연료를 챙기고, 그들조차도 척박하고 급박한 촬영 스케줄에 쫓겨 수면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일을 한다. 그리고 이후에 예능 프로그램 등에 나와 이처럼 열심히 일했노라고 무용담처럼 자랑한다. 톱스타들이 이럴진대, 무명의 스태프들의 근로조건은 오죽하겠는가. 2013년에는 1년 동안 제작사에서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영화제작사의 한 근로자가 목숨을 끊었다. 2018년에는 과로에 시달린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미술 담당 스태프가 숨을 거두었다. 젊은 꽃들이 이렇게 스러져 갈 때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여전히 촬영 기간 중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태프에 52시간 근무 보장

 

반면, 봉준호 감독은 위 기사에 드러난 것처럼 표준근로계약서를 맺고 주 52시간 근로를 보장했다. 그가 설국열차와 옥자를 찍을 때 할리우드와 협업하면서 미국의 노동조합 규정에 따라 촬영 스케줄을 맞춰갔던 것이 경험으로 남은 것이다. 이 외에 봉준호 감독과 함께 일한 배우들의 증언을 통해 봉준호 감독이 어떤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에게서는 이한빛PD 자살의 원인이었던 tvN에서 보여진 과도한 업무, 갑질, 권위적인 문화, 폭언,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가만,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당연한 것이 특이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 그래도 봉 감독은 의미있는 진일보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봉 감독처럼 성공한 감독이었기에, CJ 등과 같은 자금력이 어마어마한 제작, 유통사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투자자들은 적은 인풋으로 성과를 극대화하기 원하고, 한정된 시간과 자원에 쫓기는 현장 제작자들은 예능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의 팀원들을 압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봉 감독과 같은 한 개인의 변화만으로는 이한빛PD와 같은 안타까운 피해자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셋째, 한국 최초의 노미네이트. '기생충' 말고도 '부재의 기억'을 기억하자.

 

아카데미 주요 부문 6개 부문 후보, 가장 중요한 4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기생충(Parasite)! 각 부문 한국 최초 노미네이트 내지는 아시아 최초 수상으로 굉장한 업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기생충이 가장 밝게 빛난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시 한국 최초로 단편 다큐멘터리상에 후보로 오른 작품이 있었다. 바로 세월호를 다룬 '부재의 기억' (In the Absence). 30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세월호 침몰과 그 이후의 상황을 기록했다. 봉감독과 배우들이 레드카펫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을 때, 부재의 기억 연출자와 세월호 유가족 두 명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모든 언론이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을 극찬하는 기사를 앞다투어 쏟아낼 때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지만), 한국 최초로 미국 한복판에 세월호 침몰의 억울함, 국가 권력의 부패함을 알린 이 다큐에 대한 찬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왜 '부재의 기억'에는 찬사를 보내지 않는가? 언제부터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후보에 오름)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는가? 기생충은 결국 일부 가족 구성원의 살해, 죽음, 감금으로 끝났지만, 아들 역(최우식)을 통해 아득할지언정 작은 희망도 선사했다. 그러나 부재의 기억을 통해 얻는 희망은 무엇일까?

 

정부가 답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국가가 부재하지 않을 것임을. 진상은 끝끝내 밝혀낼 것임을.

검찰과 법원이 답해야 한다. 억울한 생명을 사지로 몰아넣은 부패한 이들이 여전히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는 이때에, 이들을 엄정히 단죄할 것임을.

국민이 답해야 한다. 양심 없는 부패한 지도자와 한패이고, 여전히 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다시는 스스로의 입으로 '국민의 대표'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끔 선거에서 투표로 보여줄 것임을.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이 가져다준 낭보에 함께 기뻐하며, 위 세 가지도 국민들에게 못지 않게 각인되길.

 

2020년 현재, 아이폰의 가장 최근(2019년)에 출시된 모델 라인업은 다음의 세 가지이다. iPhone 11, iPhone 11 Pro, iPhone 11 Pro Max. 아이폰 11은 LCD 패널을 차용했고, OLED를 장착한 Pro와 Pro Max는 고급형 모델이다. 여기에 2018년에 출시된 iPhone XR과 2017년에 출시된 iPhone 8 및 8 Plus를 Apple에서 공식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11 Pro는 $999+tax, 11 Pro Max는 $1,099+tax부터 출발한다.

 

이처럼 아이폰이 매년 신제품을 내오고 발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출시된지 5년에 가까워지는 아이폰 6s 및 6s Plus가 여전히 최고의 아이폰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신 아이폰과 성능 면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유튜브에는 2018년 고급형 모델인 아이폰Xs, 또는 2019년 모델인 아이폰11과 아이폰 6s의 speed test를 비교하여 올린 영상이 여러 개 올라가 있다. 테스트 결과는 상당히 놀라운데, 아이폰 6s의 성능이 최신 아이폰과 비교하여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폰 6s는 인터넷 속도, 부팅 속도, 앱 구동 속도 그 어느 면에서도 결론은 동일하다. 다만, 1~2기가가 넘는 게임을 초기 구동할 때 로딩 속도에서 1~2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3~4년의 출시년도 차이와, 현재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의 차이를 생각할 때 그 1~2초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무거운 게임을 작동할 때 초기 로딩의 1~2초를 벌고 싶어 $600~$700을 더 지출할 용의가 있는가? 

 

 

 

아이폰의 넘버링은 꾸준했다. 개관해보면, 대부분 매년마다 신작 아이폰을 발매했고 격년으로 s가 붙은 모델을 발표했다. 바로 여기서 애플이 사람들을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매년 아이폰이 새 이름으로 발표되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아이폰 5보다 5s가 빠르겠지. 또 그만큼 5s보다 6가 빠르겠지. 또 그만큼 X보다 XR이 더 빠르겠지."

 

그러나 팩트는 그렇지 않다. 매년 아이폰의 성능이 개선되어 발표되는 것은 맞지만, 그 성능 차가 아이폰 넘버링의 단위만큼 일정하지는 않다. 5와 5s의 성능 차 간격이 6와 6s의 성능 차 간격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아이폰의 넘버링은 interval data가 아니라, ordinal data이다. 심지어 객관적 성능을 측정하는 Geekbench score조차도, 수치가 2배 높다해서 2배 빠른 것은 아니다.

 

실제 Geekbench score를 보면, 전년도 모델에 비해 가장 성능이 비약적인 향상을 보인 모델 중의 하나는 아이폰 6s이다. 즉 아이폰 5s에서 6, 또는 아이폰 6s에서 7으로의 성능 향상폭보다 6에서 6s로의 성능 향상 퍼센티지가 훨씬 컸다는 것이다. 아이폰 6s는 아이폰 중 최초로 램 2GB를 채택한 모델이다 (아이폰 5부터 5, 5c, 5s, 6까지 모두 1GB). 따라서 동일하게 1GB를 채택한 아이폰 5s에서 6으로 넘어갈 때와, 동일하게 2GB를 채택한 아이폰 6에서 7으로 넘어갈 때보다 성능 향상의 체감율이 훨씬 크다.

 

 

둘째, 6s Plus의 커다란 화면

 

2018년부터 출시된 X, Xr, Xs, Xs Max, 11, 11 Pro, 11 Pro Max 모델 모두 액정 사이즈가 5.8인치에서 6.1인치, Max 모델은 6.5인치에 육박한다. 아이폰 6s Plus는 5.5인치이기에 위 언급한 모든 최신 모델보다 화면 사이즈가 작지만, 이 사이즈는 대각선 길이일 뿐이다. 위 모델들은 손에 착 감길 수 있도록 모두 세로가 무척 길고 가로가 짧은 와이드 화면을 채택하였다. 따라서 Max 모델 2종만을 제외한 나머지 모델들은 모두 화면 가로 길이가 6s Plus보다 짧다. 영상 감상하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 핸드폰 화면을 세운 상태로 사용하기 때문에, 체감상으로는 대각선 화면 길이는 더 짧지만 가로 길이가 더 긴 6s Plus의 화면이 제일 커보인다. 

 

 

셋째, 지문 인식(touch ID)의 편리함, 얼굴 인식(face ID)의 심리적 불편함

 

X, Xr, Xs, Xs Max, 11, 11 Pro, 11 Pro Max 모델 모두 이전의 지문 인식(touch ID) 기능을 버리고 얼굴 인식(face ID) 기능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얼굴 인식률이 아무리 정확하다 한들 비슷한 얼굴 형태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물을 인식하고 잠김이 풀리는 등 오류가 보고되고 있는 데 반해, 지문은 오로지 전 세계 인구 중 핸드폰 주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점이기에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아무리 애플이 보안을 신경쓴다 한들, 심리적으로도 카메라를 통해 얼굴 인식을 해제하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감시당하는(peeping) 느낌을 준다. 실제로는 전혀 감시 가능성이 없고 오로지 심리적인 부분이라 할지라도, 느낌 상 누군가에게는 찝찝함과 불쾌함을 주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넷째, 3.5mm 유선 이어폰 잭을 보유한 마지막 모델

 

아이폰 6s는 3.5mm 유선 이어폰 잭을 보유한 마지막 모델이다. 방수 기능과 휴대폰의 경량화, 그리고 무선 이어폰으로 인한 수익을 위해 대부분의 최신 스마트폰 제조사들(애플, 삼성, 구글 등)이 유선 이어폰 잭을 제거함으로서 무선 이어폰의 구입 및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무선 이어폰은 여러 단점이 있다. 수시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하고, 무선 이어폰보다 음질이 떨어지며, 아무리 좋은 이어폰이라 해도 약간의 딜레이(latency)가 발생한다. 아이폰 유저가 위 단점을 보완하려면 결국 애플이 만든 무선이어폰인 에어팟(Airpods)을 써야하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기존 애플 유선 이어폰보다 약 10배 가량 더 비싸다. 

 

 

다섯째, 2020년 현재 여전히 iOS가 최신으로 업데이트 된다.

 

애플은 2020년 현재에도 꾸준히 아이폰 6s와 6s Plus의 업데이트를 지원하고 있다. 다만, 2019년에 그 전 모델인 6와 6 Plus의 업데이트 지원을 중단했는데, 이 추세라면 아이폰 6s와 6s Plus의 업데이트도 출시된지 5년이 되는 2020년 중에는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여섯째, 보기 흉한 노치(notch)가 존재하지 않는다. 

 

2018년에 출시한 아이폰X부터 최신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베젤이 없는 모델들은 모두 화면 상단 카메라 및 전화수신 스피커가 있는 부분에 보기 흉한 검정 부분(notch)이 존재한다. 2019년에 발표된 최신 삼성 갤럭시폰들은 notch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카메라 구멍 사이즈만큼으로 최소화한 반면에 애플은 분명 그런 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흉칙한 노치를 탑재했다. 이는 영상 재생이나 게임 구동 시 한쪽 구석 일부분이 가리게 되며, 뉴스 기사를 읽을 때는 그 부분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일곱째, 3D 터치를 지원한다.

 

아이폰의 3D 터치는 화면을 터치하는 강도에 따라 앱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게 하는 기술이다. 2015년 6s에 처음으로 탑재되어, 2018년 발표한 XR, Xs 부터 다시 기능이 사라졌다. 딱히 유용하지 않은 기능이라 아이폰 유저 중에 이 기능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별 쓸모는 없지만, 그래도 최신폰에는 없는 기능임은 확실하다.

 

 

여덟째, 최신폰도 여전히 5G는 지원하지 않는다. 

 

경쟁사인 삼성은 2019년에 출시한 갤럭시 S10부터 5G를 지원하는 제품을 따로 출시한 반면, 최신폰인 아이폰 XR, Xs, Xs Max 또는 11, 11 Pro, 11 Pro Max 조차 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충분히 5G 기능을 11 Pro에 탑재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따리를 천천히 매년 하나씩만 풀어 신형 모델 장사를 하려는 애플의 상술에 눈쌀이 찌푸려진다. 물론 한국이나 미국이나 거창한 5G 서비스 광고와는 달리, 실제 신호도 많이 약하고 커버되지 않는 범위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5G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피한 흐름이라면, 아이폰 최신형에서는 이를 반영했어야 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5G 서비스가 가까운 미래에 가격도 떨어지고 신호도 더 잘 잡히게 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되는 시점이 오면, 아이폰 6s나 아이폰 11 Pro나 둘 다 똑같은 구형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럴 바엔 무엇하러 아이폰 11 Pro를 구입하기 위해 $1,000에 육박한 금액을 지출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차피 5G모델 나오면 똑같이 똥폰 될 것을

 

 

아홉째, 최신폰도 여전히 USB-C를 채택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논리로, 데이터 전송량 등 기능면에서 월등하여 글로벌 표준이 되어가고 있는 USB-C를 애플은 아이폰에 탑재하지 않고 여전히 독자적인 8 pin 충전선을 고집하고 있다. 심지어 자사의 맥북 프로(Macbook Pro) 라인에서 USB 단자는 완전히 USB-C로 대체한데다, 심지어 2018년 출시한 아이패드 프로(iPad Pro) 라인 역시 8 pin 단자를 USB-C로 대체하였는데 유독 아이폰만큼은 요지부동이다. 조만간 아이폰도 적어도 프로 모델만큼은 USB-C를 탑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 시점이 오면, 아이폰 6s나 아이폰 11 Pro나 둘 다 똑같이 8 pin 단자를 탑재한 구형폰에 불과하게 된다

 

 

아이폰 6s, 또는 6s Plus는 이와 같이 출시된지 5년이 다 되어가는 2020년 현재 시점에도 여전히 가격 대비 최강의 아이폰이다. 현재 아이폰 6s와 6s 플러스는 애플의 공식 판매는 중단되었지만, 온라인 상점 등 다른 경로를 통해 둘 중 더 비싼 6s 플러스도 봉인된 새 제품은 약 $300, 상태 좋은 중고나 리퍼 제품은 약 $200에 거래되고 있다. 6s Plus 새 제품을 구입하거나 중고를 구입하여 배터리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 또는 아이폰 6s/6s Plus가 2020년부터 iOS update 지원이 끊길 것을 대비하여 아이폰 8/8 Plus를 구입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명한 소비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SBS가 '다함께 차차차'라는 축구 예능 제작을 발표했다. 종편 예능 프로그램인 JTBC의 '뭉쳐야 찬다' (이하 뭉찬)가 크게 호평을 받으며 종편 예능임에도 높은 시청률을 얻고 있기에 이 흐름에 편승하려는 듯하다. 뭉찬이 지상파 예능의 시청률에는 비할 수 없다 해도, 각종 다시보기 VOD 사이트 순위나 화제성으로 볼 때에는 전체 예능 중에 상위권에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링크 클릭: '전설의 빅피쉬'가 실패할 수 없는 이유라는 이전 글에서 종편 채널 A의 예능 '도시어부'를 표절모방한 프로그램인 SBS의 파일럿 예능 '전설의 빅피쉬'의 취약한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종편 JTBC 예능 뭉찬을 따라하는 방송사는 공교롭게도 역시 SBS이다. 위 '전설의 빅피쉬' 비판 글은 최소한 1화는 시청한 뒤 작성했는데, '다함께 차차차'는 아직 방영 직전이라 1화도 보지 않았지만 제작발표회의 내용만 보고도 비판할 점이 눈에 많이 띈다. 

 

 

첫째, 뭉찬과의 차별점, 나아가 프로그램의 특색이 무엇인가.

 

적어도 '전설의 빅피쉬'는 '도시어부'를 모방할 때, 표절 의심을 지우기 위해 애써 노력한 흔적이라도 있다. (대어를 타겟으로 설정함으로서 주된 촬영지를 해외로 돌린다든가 하는 등). 그나마 조기축구에서 활약하는 뭉찬과는 달리 종목을 풋살로 지정한 듯 하나 그마저도 확정된 것은 아니다. 뭉찬과의 대결구도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뭉찬의 조기축구 영역까지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뭉찬과의 차이점은 딱 한가지. 뭉찬은 은퇴 선수들을 모아 축구단 활동을 하는 것이고, '다함께 차차차'는 연예인들을 모아 축구단 활동을 하는 것 뿐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가 계속 바뀜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닮고 장점을 수용하며 진화해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심지어 뭉찬도 야심차게 신선한 시도를 했다는 뭉찬 PD의 각종 인터뷰와는 달리 표절, 혹은 모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KBS 2TV에서 방영한 '우리 동네 예체능' 축구편에서 뭉찬의 멤버이자 예능을 담당하는 정형돈이 출연했었다. 또 축구편은 아니었지만 족구편에서 뭉찬의 감독 안정환 역시 출연한 바 있다. 심지어 '우리 동네 예체능'이 처음 시작한 2013년보다 이전에 채널 A에서 '불멸의 국가대표'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뭉찬은 이 프로그램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오다시피 했다. '불멸의 국가대표' 역시 대한민국 스포츠의 전설이었던 선수들이 종목별로 도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진행에는 김성주가 있었으며, 출연진으로는 이만기, 양준혁, 이봉주, 심권호 등이 있었다. 다만 축구를 도전하지 않고 종영했을 뿐이다. 타 종목을 도전할 때에는 주눅들어 있다가, 자신의 종목 차례가 돌아오면 코치가 되어 다른 멤버들을 가르친 것도 유사하다. 실제로 뭉찬PD는 인터뷰에서 혹한기에는 동일한 멤버를 가지고 허재를 감독으로 실내 스포츠인 농구편을 방영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는 어리석게도 표절을 자인한 셈이다. 또한 역시 뭉찬PD와 출연진이 안정환의 첫 감독 역할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과는 달리, 안정환은 '청춘FC'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이미 성공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스포츠, 더 협소하게는 축구라는 온 국민이 흥미를 가지는 아이템을 예능에서 뭉찬이 독점할 이유는 없다. 팀을 꾸려 스포츠 종목에 도전한다는 뭉찬의 아이템이 그다지 특별한 것도 아니고, 뭉찬 역시 다른 프로그램 모방을 많이 했기에 단순히 같은 아이템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 최소한 아이템은 같아도 기존 프로그램과 차별점 내지는 시청자로부터 매력을 끌 수 있는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내야 하는데 이를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연배가 높은 남자 성우를 나레이션 기용했던 '도시어부'를 따라하려던 '전설의 빅피쉬'에서 보였던 단순 기계적 모방이 쉽게 관찰된다. 더구나 그 모방 과정에서 전설의 빅피쉬가 고집했던 아이돌 끼워넣기의 실패 공식을 그대로 반복한다.

 

 

둘째, 뭉찬과의 차별점을 밝히기는 커녕 뭉찬을 조롱하기만 했다. 

 

기존 프로그램인 뭉찬과 차별점을 밝히고 본 프로그램의 강점과 매력을 어필해야할 제작발표회에서 그리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듯하다. 히트 상품인 뭉찬을 의식해서인지 뭉찬에 대한 견제 발언을 계속 쏟아내는데, 그 정도가 꽤 심했다.

 

"'뭉쳐야 찬다'에는 축구에 관심없는 전설적인 스포츠 선수들이 모였지만, 이 프로그램에는 워낙 축구를 좋아하는 방송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방송 시작부터 강한 팀을 상대한다"

 

"입담과 재미보다 진지하게 승리를 위해 경기한다."

 

"축구 예능이 아닌 이천수 감독의 지휘 아래 진지한 스포츠 경기를 볼 수 있다."

- 제작발표회 중 이수근의 발언. 

- 출처: 매국조선일보 링크 클릭: "이수근 "다함께 차차차, 축구예능 아닌 진정한 스포츠 경기"


프로그램의 기획과 출연에 주축으로 참여한 이수근의 발언이기에 이는 '다함께 차차차' 제작진과 출연진의 공식적인 시각이라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뭉찬은 '축구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입담과 예능 위주의 집단', '축구에 임할 때 진지함을 찾아볼 수 없는 이들', '원래 실력이 없는 사람들' 반면에 '다함께 차차차'는 '축구에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예능보다 축구에 더 집중할 사람들', '축구에 진지하게 임할 사람들', '원래 실력이 좀 있는 사람들'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뭉찬의 감독과 선수단, 제작진에게 굉장히 무례한 발언이다. 또한 사실과도 다르다. 뭉찬 멤버들은 시청자가 보기에 충분히 모두가 열심히 진지하게 임한다. 그 진정성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뭉찬이 이렇게 흥행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최근 방영된 편에서는 축구에 대한 열정, 실력 면에서 가장 하위 경계선에 걸쳐있다고 할 수 있는 허재마저도 나이를 잊고 동료 선수들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뭉찬이 승리를 경시한다고 비하하는데, 최근 몇 화를 시청한 사람이라면 뭉찬 멤버들이 누구보다 승리를 갈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겨울이 다가오는데 하복이 추워서라도) 더구나 승부욕 빼면 시체로 살아온 선수 출신들이라 지는 것을 누구보다 분하게 여긴다. 안정환은 종목을 초월하여 선후배 위계질서가 매우 엄격한 한국 스포츠의 대선배들이 모여있는 팀의 감독이 되어 팀을 하나로 모아 실력을 차근차근 향상시키고 있는데, 진지함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난이도 높은 성과이다. 

 

또한 뭉찬이 계속 큰 점수 차로 대패하는 모습을 비춰주니, '다함께 차차차' 본인들은 그보다는 훨씬 잘 한다고 우쭐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과연 그럴까? 이수근이야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른 이들은? 딱 봐도 예능하라고 투입한 개그맨 이진호, 모델로서 훌륭한 신체조건임에도 각종 프로그램에서 운동신경은 영 허당임이 드러난 한현민, 예능감은 좋지만 운동 실력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 딘딘, 이름도 처음 들어본 얼굴 마담 아이돌들... 뭉찬에 섭외된 스포츠 스타들도 프로그램 시작할 때에는 각자 자신들의 축구 실력에 큰 자부심이 있었다. 이만기, 심권호, 김동현, 김용만부터 최근에 용병으로 투입된 김병현에 이르기까지, '나는 신체조건에는 자신이 있어 축구에도 유리하다.'. '나는 그래도 축구는 남들보다 좀 하는 편이다.' '나는 축구를 오랫동안 꽤 훈련한 사람이다.' 라는 허세와 착각 속에 꾸준히 축구를 즐겨온 이들조차 뭉찬에서 실전을 대하고 그 실체 앞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연예인들을 데리고 '우리는 뭉찬과는 달리 축구를 잘한다'라고 발언하는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공동 기획자인 동시에 핵심 출연자이자 팀의 주장인 이수근은 다름 아닌 개그맨이고, 나머지의 대부분이 예능 출연자와 춤 추고 노래하는 아이돌인데, '우리는 뭉찬과는 달리 축구예능이 아닌 진정한 스포츠 경기'라고 발언하는 저 뻔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정말 예능 안 할 것인가? 

 

더구나 우리는 '시작부터 강한 팀'을 상대한다니? 이것은 즉 뭉찬을 상대했던 팀들은 그저 수준 낮은 팀이었다 라는 뜻이다. 이는 뭉찬을 상대했던 팀들에 대한 심각한 비하 발언이다. 정말 약팀들이었나? 뭉찬 어쩌다FC의 첫 평가전 상대는 활동 인원만 120명에 달하는 FC새벽녘이었다. 아무리 어쩌다FC가 오합지졸이었다지만, 스포츠 분야의 내노라 하는 전직 국가대표 레전드들로만 이루어진 팀인데 FC새벽녘은 이들을 11대 0으로 압도하였다. 그 다음 공식 제 1경기는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도봉축구회로서 13대 0의 스코어를 기록하였다. 심지어 그 다음 경기인 경인축구회(11대 0)는 앞의 두 팀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이후 상대한 팀 중에는 평소의 온화한 사랑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승부욕의 화신으로 변했던 최수종이 속한 일레븐FC(3대 0), 나이는 비록 어릴지라도 가장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는 이들, 바로 축구 명문 서울신정초FC(12대 2) 등이 있었다. 이처럼 뭉찬은 조기축구회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열정이 높은 팀들을 우선적으로 상대해왔다. 대체 어떤 강팀을 상대하려기에 위에 언급된 조기축구계 전통의 강호들을 한꺼번에 깎아내리는 것인가? 프로 축구 2군하고라도 경기를 하려는지? 

 

결국 동종업계에서 계속 얼굴 마주칠 제작진, 연예인, 출연진 들인데, '축구를 가볍게 보고 무시하는 저들과는 달리 우리는 진지하게 임한다!'라는 뉘앙스의 발언이 본인들 얼굴에 침 뱉는 것 이외에 대체 여타 무슨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언변도 뛰어나고 예능에서 잔뼈도 굵은 이수근이 왜 이렇게 무례하고 경솔한 발언을 했을까? 인터넷 기사를 보고 눈을 의심했을 정도이다.

 

차라리 모방 프로그램이고 축구 인기에 편승한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했으면 어땠을까. 모범 답안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최근 뭉쳐야 찬다의 성공은 수도 적고 성공하기도 어려웠던 스포츠 예능에 희망을 준 단비와 같은 소식입니다. 저도 역시 시청자이자 팬으로서 기획 단계부터 많은 부분을 참고한 것도 사실입니다. 뭉찬 출연진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예능감은 저희에게도 좋은 자극이 됩니다. 함께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뭉찬팀에 비해 뒤늦게 출발하지만, 언젠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친선 매치도 꼭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왜 이렇게 답하지 못했을까? 나한테 조언을 구했다면 저렇게 제작발표회 인터뷰 내용을 작성해주었을텐데. 내가 아닌 누구라도 충분히 저리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을. '아는 형님' 등에서 이수근의 언어 구사와 센스가 돋보여 보인 것도 결국 그저 언어에 뛰어난 사람이 별로 없는 연예인 무리들 중에서 그나마 나았기 때문이었을 뿐인가. 예능인 이수근에 대해 이래저래 실망이 크다.

 

더구나 뭉찬에서 예능인으로 발돋움한 허재의 영입을 제안하기도 했으니, 허재와 같이 축구 뿐 아니라 예능으로도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라는 바람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조금만 삐딱하게 바라보면, 같은 아이템을 가지고 순항 중인 프로그램에서 가장 HOT한 사람 한 명 빼오고 싶다 라는 역시 무례한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다. 이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셋째, 기획의 출발점이 축구가 아니다. (그러고도 축구에 대한 진지함을 논하다니?)

 

제작발표회에서 김태형 SBS 플러스 국장의 발언을 살펴보자.

 

'올봄에 젊은 아이돌과 프로그램을 하나 하고 싶은데, 춤과 노래 이외에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게 뭘까 생각했다. 유튜브에 '이수근 채널'을 보게 돼서 연락을 드렸다."

 

-출처: 스포츠동아 "링크 클릭: [DA:현장] "'뭉찬'보다 진지"...'다함께 차차차' 전국 제패 노린다(종합)

 

애초에 프로그램 기획의 출발점이 '축구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아이돌 활용법'이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그래놓고 뭉찬을 '축구에 진지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디스하는 광경이라니... 

 

 

넷째, 감독이 이천수라고?

 

대한민국 20대에서 50대에 걸쳐 이천수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딱히 부연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그는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실력을 가진 TOP 축구 선수였다. 동시에, 주먹감자로 대표되는 숱한 말썽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그의 과거 행적과 발언, 그에 따른 인성은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티비에서 참고 봐줄 만한 임계치를 한참 넘어버린 사람이다. (궁금하면 인터넷에 검색해 보라.) 개인적으로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고, 목소리도 듣고 싶지도 않다.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다. 다른 사람은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예능인 이천수는 어떠한가? 그가 출연한 소사이티 게임 시즌2를 본 적이 있다. 소사이어티 게임은 고립된 집단 생활에서 생존 경쟁을 통해 각 개개인의 인내력과 본성을 테스트하는 컨셉의 예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 이천수는 역시 비호감이었다. 불평하고, 리더 자리에 있든 있지 않든 자신만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며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종종 비춰졌고, 심지어 그런 위계 상황과 무거운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교포(?) 유학생 여성은 이천수로 인하여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은 비교적 뛰어나지만 팀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정작 본인의 강점인 피지컬마저 어필하지 못하여 탈락을 맞이했다. 상대 팀에서 유사하게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좌중을 압도했지만, 충분한 설득의 과정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내 편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기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능력치를 보여주어 결국 시즌2 우승자로 선정된 장동민과는 내내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더구나 그는 이미 축구 관련 예능을 한 번 시도해 실패한 사례가 있다. 매국TV조선에서 '히딩크의 축구의 신'을 방영하여 이천수를 코치진으로 영입했으나, 소리 소문 없이 종영했다. ('히딩크의 축구의 신'을 시청한 적은 없으나 히딩크는 사실 이름만 걸어놓은 것일 뿐이라 기획도 엉성하고, 이천수는 여러 코치진 중 한 명이었기에 이 프로그램 실패의 책임을 그저 이천수에게 돌릴 수는 없지만.) 

 

선수 은퇴 후 축구인으로서는 어떠한가? 그는 현재 인천 축구단에서 전력강화팀장이라는 보직을 맡고 있다. 과거 그와 같은 물의를 일으키고도 아직도 주류 축구계가 그를 받아주는 것을 보면, 그가 정말 뛰어난 실력의 축구선수였음은 틀림없는 모양이다. 유튜브를 꾸준히 하고 있는 듯한데, 벤투 감독의 기용을 두고 신랄하게 비판하여 곧잘 회자된다. 벤투 감독이 어느 골키퍼를 편애한다는 둥, 기회를 일부러 안준다는 둥. 기술 조언이나 전술 비판을 넘어서서, 지도자의 역량을 깎아내리고 흠집내려 하는구나 하고 눈살이 찌푸려진 기억이 있다. 역시 이천수답다라는 생각을 했고, 발언 내용 면에서도 그저 딱 유튜브에서나 나올 법한 내용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천수의 벤투 감독을 향한 경솔한 언행과 비난, 이에 대한 비판은 다음의 링크된 기사에 잘 설명되어있다. 링크 클릭: [김현회] 이천수와 송종국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

 

그런데 인천 축구단은 전력강화팀장이 예능 프로그램 감독으로 일주일에 최소 하루는 통째로 스케줄을 비워야 하는데 그것을 허용해주는 것인가? 뭉찬의 이만기, 여홍철 등도 본업이 있으나 교직에 있으니 일주일 중 하루는 비워둘 수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전력강화팀장은 업무의 강도는 둘째치고, 시기 상 시즌 진행 중에 그렇게 일주일 중 하루를 비워둘 수 있을까? 축구계 내부 사정을 모르니 나는 알 턱이 없다. 그 업계에서는 용인되는 범위 내인가보다 하고 추측할 뿐이다. 다만 내가 만일 인천 축구단 팬이라면 그리 달가운 소식은 아닐 듯 하다. 아마 내가 응원하는 구단의 팀장이 적어도 시즌 중에는 예능 출연 등 다른 일보다는 본업에 충실하기를 바라지 않을까? 심지어 인천 구단은 현재 강등권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며, 감독인 유상철마저 건강에 이상이 생겨 큰 보도가 될 정도이다. 이렇게 절박하고 중요한 시기에 팀장은 예능 출연을 하고 있으니 좋게 보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이천수에 대한 생각을 총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민국 축구사에 족적을 남긴 최고의 축구선수였다. 둘째, 예능인으로서 주류에 머물기엔 능력이 한참 못 미친다. 셋째, 축구 관련 기술자, 분석가는 할 수 있을지언정, 절대 선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 지도자 감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SBS와 이수근은 그를 택했다.

 

(차라리 '다함께 차차차'라는 운과도 맞아 떨어지게 차범근이나 차두리를 감독으로 섭외했다면 어땠을까?)

 

 

다섯째, 안정환의 우월함과 대체 불가능성

 

안정환은 대중 앞에 서는 방송인으로서는 참 많은 것을 갖춘 사람이다. 선수 전성기 때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어느 톱 연예인 못지 않은 잘생긴 외모를 갖추고 있으며, 축구 중계를 오랫동안 맡을 만큼 목소리도 좋고 입담도 훌륭하다. 냉장고를 부탁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요 출연진으로서 활약하고 시청률도 좋게 나와,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예능 흥행 보증 수표가 되어버렸다. 특히 사생활이나 평소 언행에 뒷소문이 없고, 평생 몸을 쓰는 스포츠에 몸 담아온 사람임에도 상황에 따라 바른 언어와 적절한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스타선수 출신 해설위원이었던 송종국, 박지성보다 비문도 훨씬 적다.), 이 사람을 프로그램에 투입했을 때, 흥행은 둘째치고, 적어도 실수할 가능성이 적다. 즉, 기용의 리스크가 작다.

 

그런데 안정환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그에 못지 않은 지도자로서의 격(格)이다. 예능인으로 완전히 전업한 듯 하지만, 이미 꾸준한 과정을 밟아 프로팀의 감독직도 맡을 수 있는 정식 코치 라이센스를 취득하였고, 동료였던 축구계 인사, 감독 등과 밀접한 교류, 축구 해설위원으로 오랫동안 활약해온 경험 등으로 인해 축구에 대한 감을 잃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청춘FC와 뭉찬 두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리더로서의 안정환은, 선수들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하는 축구를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함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는 이미 진정한 지도자로서 갖추어야할 덕목을 거의 완벽하게 구비한 완성형 지도자이다. 물론 농구의 현주엽 감독처럼 (그 모습 뿐이겠는가 만은) 종종 선수들과 스탭들에게 윽박지르는 스타일도 대한민국 프로 농구 감독이라는 지도자로서의 정점에 오를 수도 있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것은 여러 가지 다른 것들도 있으므로.  

 

'우리들의 공교시' 시즌2라는 프로그램에서 야구의 전설 이만수 감독은 야구 명문으로 이름 난 배명고의 야구 동아리를 맡은 적이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이만수 감독의 생일 파티를 맞이하여 배명고 야구 동아리 전원이 이만수 감독의 과거 대표 팬서비스였던 팬티 질주 세레머니를 재현한 모습이었다. 전 국민에게 방영되는 카메라 앞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생일 축하 이벤트로 팬티를 입고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제자들 앞에 이만수 감독은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수 많은 상 중에 이 생일상이 가장 큰 상이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고백하였다. 감독이 단순히 스킬을 가르치는 기술 전수자로 그치지 않고, 동아리 학생들의 마음을 얻었기에 가능했던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이후 배명고 동아리는 우승까지 함으로서 이만수 감독은 기대한 성과까지 내었다. 스포츠는 팀의 사기가 중요하므로, 기술, 전술, 피지컬 뿐만이 아니라 멘탈 관리와 동기 부여에 능한 지도자다운 지도자가 있을 때 성적까지 잡을 수 있다는 좋은 예이다.

 

'우리들의 공교시' 시즌1에서는 한국 농구의 전설 중의 전설 서장훈이 나와 고교 농구 동아리 감독을 맡았다. 비록 안정환보다 더 활발한 예능인이 되어버렸지만, 농구계 전설답게 감독으로서 적절한 전술과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강압적으로 소문이 난 한국 농구계의 고질적인 분위기에 서장훈이 오랫동안 익숙해져왔던 탓인지, 실력은 뛰어나지만 공식적으로 감독 역할은 처음이었던 탓인지, 방송 초반에 그의 다소 고압적인 훈련방식과 리더십 때문에 본의를 오해한 동아리 학생 일부와 갈등이 일어나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농구계의 전설인 서장훈이 까마득한 후배인 고교 동아리 학생 앞에서 자신의 리더십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빠르게 그 상황을 수습했다는 것이다. 서장훈, 이 사람 역시 예능인이 되어있지만 감독이 된다면 정말 뛰어난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정환은 이만수, 서장훈과 리더십 스타일이 또 많이 다르지만, 청춘FC에서 비춰진 모습은 역시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인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선수를 자식처럼 생각했던 야구 이만수 감독의 애정, 감독으로서 진화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어쩌면 무례한 언행을 보인 것일 수도 있는 한참 어린 고교 후배 앞에서도 빠르게 인정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용기와 결단력을 갖춘 농구 서장훈 감독의 자세, 결과보다는 과정과 단합, 변화와 포용을 중시하는 축구 안정환 감독의 리더십. 위 세 사람의 모습 중에 그간 우리가 봐온 이천수에게서 감독으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라도 있는가? 없다. 전혀 없다. 물론 위 세 감독의 강점을 이천수 감독이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축구 성적을 잘 내지 못하리란 법은 없다. 그러나 성적을 잘 낸다 한들, 감독 이천수에게서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이나 서사나 교훈이 있을까?

 

'예능' 프로그램에서 '축구'를, 그것도 '감독'을. 안정환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여섯째, 실적 지상주의는 축구 동호회의 진정한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도시어부와는 달리 낚시 속에 숨겨진 여백과 느림의 미학, 인생과 사람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오로지 가장 큰 물고기를 잡겠다는 목표로 낚시의 즐거움을 극단적으로 협소하게 설정해버린 '전설의 빅피쉬'의 실패요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뭉찬은 승리를 위해 함께 모여 훈련하지만 승리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있다. 50대의 이만기부터 30살 가까이 차이나는 막내가 함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임하고 미숙했던 어제보다는 오늘, 부족했던 오늘보다는 내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 조금 더 팀원을 신뢰하는 것, 개인이 아니라 팀이 되었을 때 실력이 향상되는 서로를 바라보며 격려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안정환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 하에 뭉찬에서 아름답게, 또 유쾌하게 그려진다. 그 때문에 매 경기 속이 쓰리도록 처참한 최종 스코어를 받고도 경기 직후 안정환 감독의 총평은 언제나 과정과 격려에 집중되어 있다.

 

만년 벤치 멤버인 허재가 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나이가 제일 많은 이만기와 허재가 실력과 상관 없이 후배들 앞에서 솔선수범할 때 상응하는 존중을 받으며, 실력이 가장 뛰어난 에이스 이형철보다 실력이 가장 발전한 양준혁, 진종오 등이 더 칭찬을 받는다. 중계 및 예능 담당인 김성주, 정형돈 등을 제외하면 아무리 실력이 떨어지는 멤버라도 최소한의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 교체멤버 중 가장 후순위로 호명되는 김성주, 정형돈은 오히려 본인들을 '아무나'라고 지칭했다며 감독에게 도리어 큰 소리를 땅땅 친다. 뭉찬은 어쩌다FC의 주전과 후보로 나뉠지언정 아무도 카메라 앞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모두가 뭉찬이라는 팀의 주전이 된다. 다른 멤버들보다 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멤버인 심권호에게, 그의 전 조기축구 소속팀인 일레븐FC와의 경기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안정환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직접 주장 완장을 채워주는 뭉클한 장면은 안정환 감독과 프로그램의 방향성과 가치 우선순위를 짐작하게 한다.

 

반면, '다함께 차차차'는 애초에 목표가 '전국 풋살 1위팀을 꺾는 것'이다. 조기축구와는 달리 풋살 리그에는 본업이 '풋살 선수'인 이들이 많다. 운동하기에 열악한 환경, 선수로서 넉넉치 못한 연봉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고된 투잡을 뛰면서까지 그 꿈을 좇고자 열심히 훈련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재미삼아 예능으로 만나는 개그맨들과 아이돌들이 이들을 꺾는 목표는 현실적으로 달성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의도가 교훈적이지도 않다. 뭉찬에 등장한 소방관들로 구성된 축구팀은 방송에 나와 불우이웃 돕기 일환으로 진행하는 달력 판매를 홍보하기도 했고, 60년대 생 동갑내기로 구성된 축구팀은 나이를 잊고 훌륭한 조직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 두 팀에 단순히 남자들끼리 종종 모여 축구하고 헤어지는 것 이상의 깊은 유대감이 있으리란 느낌을 받았다. 축구를 하는 데 이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축구를 통해, 또 그 모든 관계와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을 만큼 얻어가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이 축구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런데 1등팀을 꺾겠다는 성적 지상주의 속에 많은 다른 즐거움을 가리고, '다함께 차차차'는 시청자들로부터 어떠한 공감을 얻겠다는 것인가? 정말 예능은 안 할 거죠?

 

지금 그려지는 '다함께 차차차'의 모습은 성적 지상주의를 목표로 대외적으로 천명한 이상, 이천수의 고압적인 태도 하에 팀 내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멤버들이 차별받고 주눅들고 점차 팀에서 소외되는 그림이다. 이 예상은 빗나갈까?

 

 

일곱째, 시청자 타겟층 설정의 완벽한 실패

 

드라마와 같았던 2002 월드컵 4강 진출을 기점으로 여성도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졌다지만, 축구라는 예능 아이템은 기본적으로 남성층을 타겟으로 할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축구 팀이나 선수를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대부분의 남성들은 축구를 직접 즐겨본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체육 시간, 점심 시간에, 군대에서 주말 아침마다... 공과 공터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축구는 남성의 일상에 오랫동안 파고든 토템과 같은 것이다. 

 

뭉찬이 남성 타겟층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템이 축구라는 이유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자신이 한때 열렬히 좋아하던 스포츠의 우상들이 나온다는 점, 은퇴한지 수 년, 또는 수십 년이 되어 아저씨(아재)가 되어버린 전설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도 투영시켜보고 과거를 추억해볼 수 있다는 점, 아재들의 입담과 우정을 보며 남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보여준다는 점 등. 이것이 뭉찬에 여성 출연자가 한 명이 나오지 않아도 남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런데 '다함께 차차차'는 어떠한가? 소수의 중심이 되는 예능인들을 제외하면 전원이 다 '남자' 아이돌들이다. 아이템은 축구로 주 타겟층은 남성 시청자들인데, 출연진은 남자 아이돌로 구성함으로서 여성 시청자들을 주 타겟으로 할 수 밖에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남성 시청자들을 위해서 매니저나 응원단, 서포터 등의 제도라도 만들어서 여자 아이돌 한 명이라도 집어넣었어야 했다. 심지어 과거 이강인이 활약했던 날아라 슛돌이 프로그램에서조차 여자 매니저는 존재했다. 심지어 낚시라는 남성 전유 아이템으로 '도시어부'를 따라한 실패작 '전설의 빅피쉬'조 또한 여자 아이돌 한 명을 집어넣었다. 결국 '다함께 차차차'에서는 축구 예능 컨텐츠를 주로 소비해야하는 남성 시청자들은 남자 아이돌 일색이라 시청을 꺼릴 것이고, 출연한 아이돌의 일부 여성팬들만 시청을 하게 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대놓고 여성 시청자들을 주 타겟층으로 설정할 요량이었으면 출연하는 남자 아이돌들이 팬덤이 두터운, 최소 아육대에 출연하는 아이돌 급은 되었어야 할텐데... 

 

남성 시청자들을 위한 축구 아이템으로 여성 시청자들이 찾아볼 남자 아이돌을 내세우다니... 시청자 타겟층 분석의 완벽한 실패다.

 

 

여덟째, '뭉쳐야 뜬다' 출연진의 시너지를 따라갈 수 있을까?

 

'뭉쳐야 찬다'라는 프로그램명에서 볼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 출연진은 '뭉쳐야 뜬다'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뭉쳐야 뜬다'는 JTBC의 과거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1기 멤버는 현재 뭉찬에서 선수 출신을 제외한 멤버 전원인 안정환, 김용만, 김성주, 정형돈이었다. 이들이 2년 여에 걸쳐 세계를 여행하며 쌓았던 돈독한 우정과 케미를 뭉찬에 그대로 이식하였기에 뭉찬은 시작부터 어색함 없이 흘러갔다. 반면, '다함께 차차차'는 걸출한 예능인 이수근 한 사람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의 역량으로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아홉째, MC, 중계는 누가 할 것인가?: 단독 MC로서의 이수근의 불완전함

 

뭉찬에서 감독은 안정환, 그 외에 주축 멤버로 정형돈, 김용만이 있지만, 역시 상황 중계는 김성주가 주축임은 부인할 수 없다. 안정환은 감독으로 무게를 잡고 있어야 하고, 전설의 은퇴 선수들은 안정환처럼 언변이나 예능감이 뛰어난 이들이 많지 않고, 선수로서 실제 몸으로 그라운드에서 축구 실력을 보여주는데 집중해야 하기에 모든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 정리, 행사 진행, 인물 소개, 심판 역할 등은 김성주가 MC로 나선다. 심지어 경기 중에는 현장의 긴박함을 어떻게 안방 시청자들에게 비슷하게 전달하는가가 관건인데, 스포츠 중계 전문인 김성주는 주로 경기에 투입되지 않고 중계를 전담한다. 스포츠 예능에는 이와 같은 중계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따라서 과거 이강인 선수가 활약했던 어린이 축구예능 '날아라 슛돌이'에서는 중계를 아나운서 최승돈과 개그맨 이병진이 전담했었고, '천하무적 야구단'에서는 게임 캐스터 허준이 전담을 했다. 그런데 '다함께 차차차'에서는 그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 예능감이 뛰어난 이수근은 직접 선수로 뛰어야 하기에 경기 중에는 중계를 할 수도 없다. 제작발표회에서 알려진 출연진 구성으로 보았을 때는 선수 중에 MC나 중계를 할 사람이 딱히 보이지도 않고, 최소한 따로 외부에서 누구를 불러 중계라도 전담시킬 것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또한 이수근은 단독 MC보다는 집단MC, 혹은 보조MC로서 다른 사람(예: 강호동)과의 시너지를 통해 비교적 free role을 부여받아 본인의 강점을 더욱 부각시키는데 능한 연예인이다. 그런데 이수근을 한 가운데 배치한 이 프로그램에서 그를 조력할 수 있는 캐릭터가 누가 있는가? 더구나 이수근은 주장 역할도 수행해야 하므로 집중력이 분산될 수도 있다. 즉, 뭉찬에서는 중계자이자, 중립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김성주라는 존재가 있는데, '다함께 차차차'에서는 이수근은 직접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므로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보완해줄 재능있는 예능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

 

 

열번째, 촌스럽고 허접한 작명: 프로그램의 철학, 방향성과의 불일치

 

'전설의 빅피쉬'라는 촌스럽고 허접한 작명 실력은 '다함께 차차차'에도 이어졌다. 30여 년 전에 발표된 트로트 곡 이름을 사용하고, 심지어 올바른 맞춤법은 '다 함께 차차차'로 '다'와 '함께'라는 부사 사이에 띄어쓰기가 있어야 하는데, 동명의 원곡과 같이 두 단어를 그냥 붙여서 '다함께 차차차'라고 차용한다. 이런 작명 센스를 가진 제작진에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무리 '차(kick)'라는 음절이 들어갔다지만, 왜 이 철 지난 곡명을 프로그램 간판으로 쓰는 것일까? 아마도 온 국민에게 이미 익숙한 이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이름인 만큼, 그 이름과 프로그램의 방향 및 철학을 일치시키도록 충분히 숙고의 과정을 거쳤어야 하는데 그러한 고민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 함께'라는 것은 왠지 1등을 꺾고 최고가 되겠다는 성적에 대한 목표 설정보다는 '더불어', '함께', '원팀으로', '협동하여' 라는 축구를 통한 성숙과 깨달음의 의미가 더 와 닿는다. 즉 프로그램명(다 함께)과 프로그램의 목표(성적 위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셈이다. 한 마디로 프로그램의 철학과는 무관하게 그저 손쉽게 기억할 수 있는 유명한 이름이라 생각 없이 갖다붙인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팀명은 또 어떤가? 'Goal미남 축구단'이라 명명하였는데, 아마도 꽃미남에서 따온 듯 하다. 팀명은 그 팀의 색깔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립적', 또는 '포괄적'이어야 한다. 차후에 누가 들어오더라도, 아니 적어도 이미 합류가 결정된 팀멤버들 사이에서 만큼은 소속감과 동질감을 확실히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기존 축구단이 지역이나 직종에 따른 팀명이 많은 이유이다. 그런데 '다함께 차차차'의 축구단 이름은 외모에 관한 것이다. 미남을 이름으로 해버렸으니, 당장 팀 내에서 가장 권위를 가지고 중심축이 되어야 할 감독 이천수부터 해당되지 않는다. 미남 안정권(?)에 들어온 아이돌 멤버들 내에서도 속마음으로는 이견이 생길 수도 있다. 팀명이 팀의 동질감과 단합심을 오히려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지 우려스럽다. 또한 외모를 가지고 팀명을 만들었다는 것은 역시 '진지함' 또는 '축구'가 아닌 '비주얼', 또는 '아이돌'에 프로그램의 방점이 찍혀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 팀명을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 이수근이라고 하니, 예능인인 그에게 대체 어디까지 실망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정말 예능이 아니라 스포츠인가? 

 

예능이 아니고 스포츠라고 주장해봤자, 누가봐도 예능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출연진이 스포츠인으로만 구성된 뭉찬도 100% 예능 프로그램이다. 예능이 아니라 스포츠라면, 정말로 상대 팀과의 경기 장면만 중계하고 끝나야 할 것이다. 시청자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시청해주길 바라는 이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본 프로그램의 매력 포인트가 대체 무엇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심지어 기획자와 주장은 개그맨(이수근)에, 나머지 출연진은 죄다 개그맨, 예능인, 아이돌이다. 가장 황당한 것은, 제작발표회 때 심지어 팀을 창단해 풋살경기를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월드컵 단체 관람'을 미래 구상으로 내놓았다. 그 스포츠 참 좋은 스포츠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은 아직 방영 직전이라 1회도 보지 않고 내리는 결론이기에 성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방영이 시작되면, 굳이 내가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이다. 완성도가 높으면 시청률과 화제성으로 반영이 될 것이고, 완성도가 낮으면 알아서 비판이 쏟아질 것이므로. 지금의 느낌으로는 이 프로그램 역시 '전설의 빅피쉬' 2탄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김용 작가의 3부작 영웅문은 중국 무협 소설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이다. 신필(神筆)이라고 불리우는 작가의 튼튼한 서사구조와 세심한 인물 설정, 개성있는 캐릭터는 몇 번을 읽어봐도 탄복하게 만든다. 3부작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로 구성되어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 중 3부인 '의천도룡기'는 특히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1, 2부에 비해 주인공이 다양한 여성과 로맨스로 엮여 있어 더 다양한 팬층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영화부터 드라마, 만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포맷으로 제작되었다.

 

이토록 탄탄하고 훌륭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내내 가슴이 탁 막힌 듯한 답답함을 몇 번이나 지울 수 없다. 작가의 허술함인지, 아니면 이처럼 방대한 서사를 풀어내기 위해서 이 정도의 부족함은 불가피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개인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부분을 짚어보고자 한다.

 

 

1. 은소소는 대체 왜 그와 같은 원망을 들어야 했으며, 대체 왜 죽어야만 했는가?

 

배경

 

삼봉의 제자로 이름을 날리는 무당 칠협 중의 한 명인 오협 장취산은 천응교 교주 백미응왕 은천정의 딸인 은소소와 결혼하게 된다. 우연히 접한 도룡도의 비밀을 풀고자 무당으로 향하던 삽협 유대암을 은소소는 독침으로 공격하여 부상을 입힌다. 악의는 없었기에 용문표국의 도대금을 찾아가 부상 당한 유대암을 무당으로 안전하게 호송할 것을 의뢰한다. 단, 임무에 실패할 시 용문표국 사람들을 모조리 도륙하겠다는 협박을 한다. 용문표국은 무당산에 이르러 무당파 사람들로 위장한 서역 소림파 무리들에 속아 유대암을 넘겨주게 되고, 유대암은 그들의 대력 금강지에 당해 관절과 힘줄이 모두 상해 다시는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된다. 유대암을 납치한 이들에게 은소소가 덤벼보았지만 정작 본인도 부상을 입고 만다. 이후 용문표국을 찾아가 임무 실패의 침입을 물어 전원 몰살한다.

 

무당파의 조사인 장삼봉의 생일, 빙화도에서 빠져나온 장취산은 부인 은소소를 데리고 10년 만에 무당산을 찾았다. 여기서 도룡도에 대한 탐욕으로 뭉쳐 금모사왕 사손의 행방을 캐묻기 위해 나타난 여러 문파들의 겁박을 받게 된다. 소림 3대 고승과의 대결을 위해, 무당의 제자들은 일곱 명의 진을 펼치고자 한다. 불구가 된 유대암의 자리를 장취산의 아내인 은소소가 채우게 되어 보법과 방위를 유대암이 설명할 자리를 마련한다. 이때 은소소가 10년 전 유대암을 독침으로 부상입힌 장본인임이 드러나 유대암은 오열을 하게 되고, 10년 간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도 그에 대한 설명을 전혀 듣지 못했던 장취산은 크나큰 배신감을 느낀다. 장취산은 사형이 불구가 된 데 대한 남편으로서의 죄책감, 사문에 대한 미안함, 의형제인 사손의 행방을 밝힐 수 없는 책임감 등의 이유로 모든 문파들의 앞에서 자결을 하게 되고, 은소소도 그 뒤를 잇는다.

 

의문

 

남편의 사형인 유대암을 10년 전 독침으로 쓰러뜨린 이가 은소소 본인임을 남편 장취산에게 내내 숨겨와 약간의 허물이 있다고 한들, 유대암을 독침으로 부상 입힌 것은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한 일이었고, 그를 위해 용문표국에 무당산으로의 안전한 호송을 부탁하기까지 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인 유대암이 불구가 된 사건은 은소소가 한 것이 아니라 서역 소림파의 악랄한 계략과 공격 때문이었는데, 유대암 본인을 포함한 무당 칠협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재회 자리에서 왜 그토록 은소소에게 원망을 표했던 것인가?  유대암을 결정적으로 불구로 만든 범인도 아닌데, 남편 장취산은 왜 그토록 실망을 한 것인가? 그 상황에서 유대암과 장취산의 반응은 마치 은소소가 유대암을 대력금강지로 불구로 만든 범인일 때나 나올 법한 반응이었다. 설령 그 날 장취산과 은소소가 자결을 하지 않고 목숨을 보전했다 하더라도, 과연 이후 은소소가 장취산과 정상적인 부부관계 유지가 가능했을까? 

 

의뢰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은소소가 용문표국 사람들을 몰살시킨 잔악함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의 잔악함은 의천도룡기 세계관 내에서 정파, 사파를 구분하지 않고 무수히 등장한다. 유대암과 장취산만 은소소의 허물을 용서하고 비호해줬다면 그와 같은 파국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민은 수 백 배는 더 잔악한 행동을 했어도 여주인공 버프를 받고 비난을 비껴갔으며, 역시 수 백 배 더 잔인한 살겁을 저지른 멸절사태는 정파 장문인에 무공의 고수라는 이유로 역시 비난을 비껴간다. 아마도 이 둘이 살육하고 원한을 입힌 이들은 심지어 작품의 최대 악적인 성곤보다도 많을 것이다. 전혀 형평에 맞지 않는다. 

 

 

2. 도룡도에 그토록 집착하는 무림인들이 왜 의천검에는 전혀 집착하지 않는가?

 

배경

 

무림지존 보도도룡 武林至尊 寶刀屠龍 : 무림의 지존 도룡도라
호령천하 막감부종 號令天下 莫敢不從 : 천하를 호령하니 감히 따르지 않을 자 없도다
의천불출 수여쟁봉 倚天不出 誰與爭鋒 : 의천검이 나타나지 않으니, 그 누가 예봉을 다투랴

 

유대암이 불구로 된 것부터 금모사왕 사손과 장취산, 은소소가 빙화도로 가게 된 이야기까지, 무림지존이라는 도룡도에 대한 무림인들의 탐욕과 집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제왕 사우론부터 약골 골룸까지 본인의 힘의 세기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절대 반지를 얻기 위한 무한한 탐욕에 이끌리는 것과 비슷하다. 엄청난 보도인 도룡도를 얻게 되면 무림 지존으로 등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룡도를 차지하기 위해 죽고 죽이기를 반복한다. 

 

의문

 

작 중에서 의천검은 도룡도에 비견할 만한 최고의 무기이다. 위 싯귀에 의하면 '도룡도의 힘=의천검의 힘'이라는 공식이 성립힌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병기 다 곽정과 황용이 신조대협 양과가 강호를 떠나며 준 현철중검이라는 같은 재료를 가지고 동시에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는 외날로 된 베기 위주의 도(刀)로, 다른 하나는 양날로 된 찌르기 위주의 검(劍)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도룡도에 그토록 집착하는 무림인들이 왜 의천검에는 같은 수준의 집착을 보여주지 않는가? 금모사왕 사손은 무공이 매우 뛰어날 뿐 아니라 복수심에 불타 늘 공격성을 띄고 주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도룡도까지 있어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죽여 도룡도를 차지하기 위해 무림인들은 무시무시한 광기를 보인다. 장님이라고는 하지만 작 중 고수인 자삼용왕(금화파파)조차도 함부로 그에게서 도룡도를 가져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그를 상대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힘을 가진 의천검을 멸절사태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온 무림인이 알면서, 무림인들은 왜 멸절사태나 아미파를 불시에 전혀 공격하지 않는 것인가? 왜 의천검에는 그만큼의 소유욕을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심지어 도룡도는 사손이 늘 가지고 있지만, 의천검은 때때로 멸절사태가 제자에게 들고다닐 것을 명하기도 한다. 막강한 힘을 얻기 위해 도룡도와 의천검을 선택해야 한다면, 소지자의 소재도 불분명한 도룡도보다는 위치도 분명하고 본인이 늘 몸에 지니지도 않는 의천검이 훨씬 얻기 쉬울 것이다. 멸절사태의 무공도 작중 고수이긴 하나, 금화파파, 청익복왕 등과의 대결에 미루어 볼 때, 도룡도를 지닌 사손보다 딱히 더 강할 것도 없다. 그런데 도룡도를 사왕이라 불리우는 무시무시한 사손에게서 빼앗는 일은 광적으로 집착하는 무림인들이, 의천검을 지닌 멸절사태에게는 왜 덤벼들 생각을 하지 않는가? 더구나 청익복왕 위일소에게 제자를 빼앗길 정도의 경계 수준이라면 몇 개 문파만 손잡으면 아미파를 습격하여 의천검을 차지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무림인들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긴 하지만, 의천검 안에는 구음진경과 항룡십팔장이, 도룡도에는 악비의 무목유서가 들어있었으니, 무림지존을 꿈꾸는 강호인들에게는 심지어 의천검이 더 가치 있는 것이다. 멸절사태의 의천검을 건드렸다가 아미파의 보복이 두려웠을리도 만무하다. 명교의 세가 전국에 걸쳐 있기에 오히려 아미파보다 명교(금모사왕 사손)를 건드렸을 때 위험부담이 더 크다. 더구나 무림인들은 아미파보다 더 존경을 받고 세력도 더 강한 무당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룡도를 가진 사손의 행방을 이유로 작 중 최고 고수이자 무림의 태산북두라는 장삼봉의 생일에 무기를 들고 쳐들어갔다. 그리고 십 년만에 돌아온 가장 아끼는 제자와 그 아내를 겁박함으로서 무당파와 장삼봉을 욕보인다. 그렇게 막무가내인 무림인들이 의천검을 가진 아미파와 멸절사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은 모순 그 자체이다.

 

 

3. 장무기를 증아우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집단 안면인식 장애

 

배경

 

장삼봉을 떠나 상우춘과 함께 호청우를 찾아간 장무기는 호접곡에서 의술을 배우다 유랑 중에 외딴 계곡에서 우연히 능가경을 입수해 구양진경을 수련하게 된다. 수 년이 지나 내공이 무척 심후해진 장무기는 주아를 만났을 때부터 이후 광명정을 습격하는 6대문파를 다 막아낼 때까지 본인의 신분을 '증아우'로 밝힌다. 혹여 본인의 신분으로 인해 다시금 무림인들이 사손의 소재에 광적인 집착을 보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 십 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알아보는 이가 한 명도 없다. 

 

의문

 

장무기가 장삼봉을 떠나 호청우와 함께 몇 년을 지내고, 또 계곡에서 구양진경을 수양하는 데 몇 년이 걸렸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장무기가 열 살 즈음하여 장취산, 은소소와 함께 무당산을 찾았을 때가 장삼봉의 100세 생일이었고, 장무기가 명교 교주가 되어 조민의 공격을 막기 위해 다시금 무당산을 찾았을 때가 장삼봉의 110세 생일 즈음이었으니 장무기가 신분을 숨기고 강호에서 드러나지 않는 기간은 제일 길게 잡아봤자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장무기를 그토록 아끼며 현명신장 치료를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을 맞대어 진기를 주입해주었던 무당 대제자들은 6대문파의 광명정 습격 당시 장무기가 모든 문파를 무찌른 뒤 은리정에게 '은육숙'이라는 한 마디를 내뱉기 전까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장무기가 무당의 경공인 제운종을 사용하자 '어떻게 저 사람이 무당의 경공을 알지?'하고 의문스러워하는데 그칠 뿐이다. 심지어 조민이 장무기로 위장하여 무당산을 공격했을 때, 장무기가 얼굴에 숯과 같은 것을 발라 시종으로 변장하였을 때는 장삼봉을 '태사부'라고 칭하며 나서는 데에도 장무기가 그새 한 명을 무찌르고 '선친이 장오협이다.'라고 외치기 전까지는 장삼봉과 유대암 모두 장무기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은육숙이라고 부를 때는 알아보고, 태사부라 부를 때는 못 알아본다?). 심지어 옷을 바꾸고 얼굴에 살짝 거무스름하게 발랐을 뿐인데, 불과 며칠 전까지 같이 있었던 명교 고수들(은천정, 양소, 위일소)조차 장무기를 단박에 알아보지 못한다. 이 정도면 모두가 집단 안면인식 장애 중증 수준이다. 

 

이 정도의 괴이한 중증 안면인식 장애를 이해해보려고 아무리 애써도 그 이유를 가늠하기 어렵다.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보자면 첫째, 장무기의 공백기 동안에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얼굴이 많이 바뀌어 잘 못 알아볼 수도 있다. 어렸을 적 장무기를 금화파파와 함께 만났던 주아가 장무기를 무척 사모하면서도 증아우가 장무기임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그러나 장무기는 역시 어렸을 적 만났을 뿐인 주지약, 양불회와 재회했을 때 그들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챈다. 장무기 혼자 정상인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주아는 성인이 된 후의 장무기 모습을 봤으면서도, 영사도에서 어부로 변장한 장무기를 보고도 못 알아보니 증세가 심각하다.) 둘째, 장무기가 현명신장으로 인해 받은 내상이 워낙 심하고 치료방법이 전무하였기에 가까운 사람일 수록 오히려 더욱 장무기가 그 나이까지 생존하였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또한 셋째, 의천도룡기 세계관에서 고수들 끼리는 사용하는 무공의 초식, 보법만 보고도 어느 인물인지 짐작하는 것이 가능하니, 다양한 무공을 사용하는 장무기의 정체에 대해 더 혼란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무기의 유년기 때 알던 이들은 대부분 고수들이다. 따라서 장무기가 구양신공의 내공에 기반한 무공을 펼치고 있음은 인식이 가능했을 것이며, 그렇다면 현명신장도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했을 법하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까지 생각을 하지 못한다. 

 

 

 

4. 몰래 배운 절기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배경

 

영웅문 3부작은 각각의 독립적인 이야기이지만, 1부(사조영웅전), 2부(신조협려)는 핵심인물들이 그대로 연이어 등장하는 반면, 2부(신조협려)와 3부(의천도룡기)도 우연히 능가경을 수련한 각원대사, 그리고 그에게 구양신공의 일부를 전수받은 장군보(장삼봉), 곽양(아미파 조사)의 이야기를 일부 공유한다. 각원대사와 소년 장군보의 이야기에서 핵심이 된 갈등 사항은 몰래 무공을 배워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화공두타가 소림사에서 몰래 무공을 배워 도주한 뒤 악랄한 짓을 저지른 선례가 있기에 소림사에서는 규율에 따라 몰래 무공을 배운 이에게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가하게 되어 있어, 장군보는 곤륜 삼성 하족도를 소림사를 위해 무찌르고도 각원대사와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또한 3부 중심인물인 금모사왕 사손은, 칠상권보를 훔쳐 익혔다는 이유로 공동파와도 원수가 되어있다.

 

의문

 

이토록 무공을 제한된 이 외에 전수받는 것이 엄격히 금지된 세계관인데, 이상하게 의천도룡기의 장무기에게 만큼은 무척 관대하다. 장무기가 광명정 대결에서 그 자리에서 용조수를 흉내내었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능가경에 기반한 구양신공을 펼쳤음에도 소림사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칠상권보를 훔친 사손에 대한 원한을 가진 공동파는, 문파 소속이 아님에도 사손에게 칠상권을 배워 칠상권에 조예가 깊은 장무기에 대해서 역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명교 교주 외에는 수련이 엄격히 금지된 건곤대나이 신공을 장무기가 7성까지 연마하여 6대문파의 대결에서 사용하였음에도 명교 고수들은 자신들을 구해줬다는 감사함과 기쁨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건곤대나이 신공을 익혔기 때문에 교주가 되어야 한다.'라는 선후관계가 뒤바뀐 억지 논리를 펼친다.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시점에도 성화를 지키고, 교주만이 출입할 수 있는 비밀통로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규율을 중히 여기는 명교 고수들이, 허락도 없이 건곤대나이 신공을 익힌 장무기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그때는 양정천의 유서를 밝히기도 전이었다. 조민이 명교 장교주로 위장하여 무당산을 습격하기 전에도 장삼봉이 불구가 된 유대암에게 창안해낸 태극권을 최초로 전수할 때 시종으로 분한 장무기가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장무기는 장삼봉과 유대암이 보는 앞에서 조민의 부하와의 대결에 강호에서 처음으로 태극권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삼봉이나 유대암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심지어 장무기가 태극권을 사용하여 대결한 상황은 장무기가 아직 본인의 정체를 장삼봉이나 유대암에게 밝히기도 전이었다. 즉,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 무당파에 들어와 있는데, 무당파의 절학인 태극권을 허락도 없이 사용하는 상황에도 그저 덤덤히 반응하는 장삼봉과 유대암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5. 여주인공 조민은 희대의 악적. 무림의 원한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손이나 작중 메인 빌런 성곤보다 훨씬 더 악랄하다.

 

배경

 

작중 후반부로 갈 수록, 청순하고 아름다웠던 주지약은 질투의 화신이자 사악한 무공을 익힌 이로 그려지며 여주인공 후보에서 몰락하고, 조민은 장무기를 도우며 여주인공 자리를 굳힌다. 그런데 조민의 행적을 보면 성곤보다 먼저 단죄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며 그 방법조차 무척 사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주인공 버프를 받아 장무기를 비롯한 무림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악행을 망각해버리고 만다.

 

의문

 

조민이 얼마나 악랄하고 더러운 여자인지 그녀의 행적을 살펴보자. 그녀는 광명정에서 명교와 일전을 벌이고 돌아가는 6대문파의 고수들을 만안사에 가두고 이 과정에 고수들을 제외한 6대 문파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을 멸문에 가깝게 학살했다. 또한 무림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림사를 습격하여 역시 많은 이들을 죽이고 납치했다. 만안사에 잡혀온 6대문파의 고수들에게 독약을 먹여 내공을 못 쓰게 한 뒤 목숨을 빌미로 그들의 무공을 익히고 그 무공의 파훼법을 익혔으며, 기대에 못 미친 고수들의 목숨을 뺏거나 손가락을 한 개씩 자르는 잔인한 악행을 저질렀다. 이 많은 악행을 명교에 뒤집어씌우려 했으며, 소림을 멸문에 가깝게 몰아붙인 것은 물론 무당도 멸문하려 했다 (장무기에 의해 저지당했다.). 소림사 공성대사의 경우 아예 대결에서 죽여버리기까지 했으며, 무당 육협 은리정도 사지의 뼈를 대력금강지로 절단하여 불구로 만들었다 (이 부분은 조민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가장 사악하고 악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민이 무당파를 멸문하려고 소림에 이어 명교 장교주로 위장하여 무당산을 방문하기 직전, 무당파 멸문을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부하를 시켜 장삼봉을 살인하고자 한 것이다. (이때 장삼봉은 큰 부상을 입는 데 그쳤지만, 장무기가 광명정에서 명교를 위해 싸운 것처럼, 무당산에서 무당파를 대신하여 싸우지 않았다면, 심각한 부상을 당한 장삼봉과 불구가 된 유대암 밖에 고수가 남아있지 않은 무당산에서 무당파는 멸문을 당했을 것이다.). 

 

조민이 원나라 왕의 딸로서, 원나라에 대항하는 중원무림인들과는 불가피하게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조민은 악한 부하들을 이끄는 가운데 중원을 노리는 원나라의 입장에서 단순히 명목 상 공주 노릇을 한 것이 아니라, 조민 본인이 주체적으로 이 악랄한 계획을 추진, 실행했다. 무림 고수들을 만안사에 납치해 가두었을 때, 여양왕과 그 아들이 고수들을 원나라에 복종시켜려는 의도를 실행한다는 명목 하에 조민은 대결 패배 시 손가락 하나씩을 끊는 잔악한 명령을 내리면서 각 문파 무공을 섭렵하고자 하는 단순한 호기심을 충족하려 했다. 6대 문파 말살 계획이 여양왕부 누구에게서 최초로 나온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방법을 구체화하여 명교 교주로 분하여 소림과 무당을 멸하고자 부하를 이끌고 실행에 옮긴 최종 집행책임자는 분명 조민이다. 대력금강지로 무당칠협 중 두 명을 불구로 만든 이들(아대, 아삼 등), 도룡도를 얻기 위해 장무기를 납치하여 현명신장으로 수 년 간 괴롭게 만든 이들(현명이로: 녹장객, 학필옹) 모두는 조민의 직속 부하로서, 장무기가 교주가 된 시점에도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일관되게 악랄한 수법을 거듭해 왔다. 그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조민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거나 만류한 적이 없다. (대체 착한 은소소는 왜 죽은 거야? ver. 1) 여양왕부에 고대사로 잠입하여 조민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오랜동안 지켜보았으며, 작중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정직하고 의로운 이인 광명우사 범요가 장무기에게 '조민은 독하고 악랄하니 조심하라.'라고 조언을 해줄 정도이다. 이러한 악랄한 조민을 영웅이 된 장무기를 향한 굳건한 사랑으로 희생을 보여준다 하여 어떻게 일거에 용서할 수 있는가? 용문표국 몰살과 유대암을 부상시킨 일로 은소소를 죽일 듯 몰던 무림인들이 아무도 장무기에게 저런 악랄한 조민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가? 왜 이런 악랄한 여자가 작중 히로인이 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의천도룡기 세계관은, 김용 소설 가운데 소오강호 다음으로 정파와 사파 간 대립이 극심한 설정이다. 이 때문에 강호의 존경을 받는 정파인 무당파의 오협 장취산과 사파인 천응교 교주의 딸 은소소가 부부로 맺어진 것에 무림인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정파와 사파가 아무리 갈등이 극심해도, 당시 시대상을 고려할 때 무림인과 원나라 군부와의 관계보다 극심할 수는 없다. 그런데 장무기는 존경받는 무당파의 제자이자 후손이고 무림 전체를 멸문의 위기에서 구해낸 명교의 교주임에도 중원 사람들 압제해온 원나라 여양왕의 딸과 교분을 나누는데 큰 반발이 보이지 않는다. (대체 착한 은소소는 왜 죽은거야? ver. 2) 은소소는 심지어 과거의 행위를 속죄하고 남편이 속한 무당파에 인정을 받기 위해 무당산으로 찾아가기까지 했는데 그와 같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조민이 아버지(여양왕)와 조국(원나라)을 저버리고 장무기를 따랐다 하여 모든게 없었던 일이다시피 되어버린 상황이 무척 당황스럽다.

 

기릉향목으로 가짜 의천검을 구경한 명교 고수들을 중독시킨 것이나, 뼈가 부러진 데 명약인 흑옥단속고를 얻어내기 위해 부상당한 부하들의 몸에 일부러 흑옥단속고가 아닌 칠중칠화고를 발라놓은 것을 그저 조민이 절대적인 무력과 권력을 등에 업은 공주로서 자라오면서 얻은 자유분방한 성격, 장무기를 속으로 연모하여 짖궂게 그의 관심을 끌려한 행위로 작가는 가볍게 넘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얼마나 악독한 짓인가? 유대암은 무림에서 알아주는 고수이자, 강호에서 이름난 의협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조민 부하의 이십여년 전 행적으로 불구가 되어 수 십 년 간 혼자서 움직이지도 못한 상태였다. 심지어 그 사건은 장무기 부모의 사망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건이었다. 죄책감에 살아온 장무기가 또 다시 은리정이 똑같은 방법으로 불구가 된 것을 목도하기까지 했는데, 마침내 이를 치료하고자 조민의 부하의 부상부위에서 채취해간 약물이 치료약인 흑옥단속고가 아닌, '내장에 수만마리의 벌레가 뚫고 다니는 것처럼 괴롭다' 하여 지극히 악랄한 독으로 알려진 칠중칠화고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무기로 하여금 치료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두 사숙(유대암, 은리정)에게 이 독을 바르게 만들었다. 심지어 흑옥단속고의 치료법은 부러진 뼈를 다시 한 번 부러뜨려 부러진 부위에 바르는 몹시나 고통스러운 방식이었는데, 거기에 악랄한 독까지 바르게 만든 것이다. 장무기를 속이기 위해 조민의 지시로 뼈가 부러진 부위에 칠중칠화고를 바른 채 대기하고 있었던 조민의 부하들(아삼, 아대)이 불쌍해지기까지 한다. 짖궂은 행위로 장무기의 환심을 사고 싶다지만 정말 방법이 이토록 악랄할 수 있을까. 장무기의 환심을 사거나, 무림 고수들의 무공을 훔치기 위한 욕심에 협박을 했다지만 (하지만 손가락은 실제로 잘랐고 숱한 각종 문파 문하를 학살했다.) 그 협박의 내용이 너무 사악하다. 주지약이 미인인데다 장무기와 깊은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그 얼굴을 칼로 망쳐버리겠다고 위협했고, 죽이겠다고도 했으며, 멸절사태의 자존심을 꺾기 위해 아미파 제자들을 벌거벗기겠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멋대로 자란 공주라 그저 철이 없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지나치고 사악하다. 이처럼 조민은 살인한 사람의 수는 일부러 살인을 하고 다닌 사손과 비슷하고, 방법이 악랄하기는 제자(사손)의 가족을 겁탈하고 살인한 성곤과 비견할만하다. 이런 천하의 악적을 끝까지 예의를 갖추어 대하는 장무기는 김용작가의 말처럼 너무나 '우유부단'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리석게 보이기까지 한다.

 

바라건대, 의천도룡기는 어디까지나 열린 결말이므로, 차후에 장무기가 조민 바라기에서 벗어나 주지약을 다시 택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는 작품의 핵심인 의천검과 도룡도의 이야기와도 맥이 닿아있다. 조민(도룡도)을 제일 사랑하는 줄 알고 지내다가(무림지존 보도도룡 武林至尊 寶刀屠龍 호령천하 막감부종 號令天下 莫敢不從) 주지약(의천검)이 나타나는 바람에(의천불출 수여쟁봉 倚天不出 誰與爭鋒) 결국 조민을 버렸기를 바랄 뿐이다. 조민이나 주지약이나 어차피 악행을 저지른 것은 마찬가지이고, 둘 다 이에 대한 반성을 했다면 장무기는 희대의 악녀 조민보다는 당연히 주지약과 맺어져야 할 것이다. 악행의 정도와 종류, 숫자에서 전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민이 장무기에게 요청한 3가지의 약속 중 하나를 장무기와 주지약이 결혼하는 것을 막는데 썼으므로, 주지약 또한 본인이 단언한 대로 장무기가 들어주기로 한 한 가지의 약속을 장무기와 조민이 결혼하는 것을 막는데 썼기를 바란다. 김용 작가 역시 '네 명의 낭자 중 조민을 가장 깊이 사랑한 것 같으나, 나중에 주지약에게도 똑같이 그 말을 했고, 우유부단한 성격에 어떤 낭자를 제일 좋아하는지 아마 장무기 본인도 모를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을 작품 뒤에 첨언했다. 

 

 

이처럼 의천도룡기에는 합리적으로 전혀 이해가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어쩌면 의천도룡기를 읽으면서 흥분하며 몰입해 읽는 이유는, '재미있다고 뇌가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당연한 듯 전개되는 것에 대하여 생기는 극도의 짜증에 뇌가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두 개가 혼재되어 구분이 불가능할 때 흥분이 극대화되어 이 스토리를 각종 매체(책, 드라마, 영화)에서 접하는 이들이 그것을 합쳐 '흥미진진함'으로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무서운 곳에서 이성에 고백하면 두려워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뇌가 상대방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하여 성공률이 높다.' 라는 풍문과 비슷하다랄까. 이 오류사항들은 앞으로도 계속 업데이트 될 것이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와 같은 것을 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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